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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주 Dec 21. 2023

점집에서 아빠가 곧 죽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답십리의 김정일.
답십리에 살 때 한 철학관에서 지어준 내 별명(?)이다.
꽤 유명해서 예약하기도 어렵고 예약 후 두 달 정도 후에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가면 a4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를 준다.
그리곤 본인이 말하는 것을 받아쓰라고 한다.
나는 볼펜똥이 나오는 그 펜을 꾹꾹 눌러 최대한 정자로 써가며 나중의 내가 알아먹을 수 있도록 하려 노력했다. 그런 나에게 철학관 아저씨는 말했다.      
“자, 받아써. 나는 답십리의 김정일이다.”   

   

나는 답십리의 김저.. 쓰다가 펜 던질뻔했다. (장난이다.)

그만큼 고집세고 독선적이란 말이겠지.

그 철학관은 아저씨 말하는 게 웃겨서 서울에서는 유일하게 두 번 간 철학관이기도 하다.

그때가 스물아홉이었다.

사춘기일 때 본인이 사춘기인 줄 모르는 것처럼, 스물아홉 일 때 내가 아홉수인 줄 몰랐다.

그냥 힘들었다.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사랑도 없고. 하소연할 곳도 없어서 의지했던 곳이 바로 철학관 혹은 점집이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나 기억에 남는 말이란, 답십리의 김정일 뿐이라니. 몇십 군데에 얼마를 썼는데.




팬대믹때문인지 무당님들도 비대면시대에 적응하시려는 건지 각종 어플과 전화로도 상담이 가능했기에 하루에 세 군데에 돈을 쓴 적도 있었다. 그때 마지막 무당님과 통화를 마치며 다짐했다. 앞으론 이 돈으로 치킨을 사 먹으리라. 왜냐면 가장 가까운 미래도 맞추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동안 점집을 멀리하며 치킨을 가까이했다. 그리고 서른둘 인 지금, 그래 만으로는 서른하나다. 아무튼! 일이 안 풀려도 너무 안 풀리는 것 아닌가. 일단 가족과의 관계부터 시작해서, 본업인 연기로 돈벌이를 못하고 있는데 아르바이트 면접도 자꾸 떨어지니 이건 살라는 건지 죽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랜만에 신점 보는 곳을 찾았다. 정확한 말로는 어플로 리뷰가 좋은 곳을 신청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틈타 그렇게 은밀한 전화통화를 시작했다.


중년의 목소리인 아주머니 무당은 애기동자 신을 받든다고 했다. 그래서 통화하다 애기동자 목소리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말라고 친절하게 나를 안심시키셨다. 사실 나는 무섭다기보다는 재밌어하는 편인데. 통화를 시작하자 금방 찾아온 애기동자 신은 목소리가 조금 쉬었지만 나름 귀엽게 나에게 말했다.

“엄마느은~책이 보여. 그리고 오 그리고 오 젊은 남자가 보이는 데에 가까운 친척 중에 일찍 돌아가신 분 없오?” 있다! 우리 큰아빠! 우리 큰아빠가 날 지켜주고 있는 건가? 책도 쓰고는 있으니 맞췄고? 애기동자 용하다! 애기동자는 얼마 안 남은 이번달만 지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하는 말.


그런데에 엄마 아빠가아 갑자기 가실 일이 생길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보요!


두려운 이야기를 귀여운척하며 말하는 애기동자 신을 앞에 있으면 확 쳐버리고 싶다. 그렇게 찜찜한 마음으로 전화통화는 종료되었다.




늦둥이 막내딸로 태어나 아빠와 이렇다 할 뭐 해 본 것도 없고, 아직 뭐 제대로 해드려 본 것도, 그래서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보지도 못했는데, 안된다. 절대.

나는 서둘러 다시 리뷰가 좋은 점집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번째 통화를 시작한다.

이제 내 앞길은 생각도 안 난다. 굶어 죽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고생만 하시다 벌써 연로해진 부모님, 특히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은 아빠가 걱정되어 이제 부모님 사주를 보기 시작한다. 여기는 타로랑 사주를 합쳐 전화로 보는 곳이란다. 결론만 말하자면 부모님 성향부터 그냥 다 틀렸다. 안 되겠다. 직접 발품 팔아 움직여야겠다.




이제 목표는 ‘우리 아빠 오래 산다’는 말 듣기이다. 갑자기 효녀 연지 납셨다. 발품 아닌 발품, 손품을 파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아주머니, 혹은 사업하시는 분들이 많이 다니시는 곳, 그곳에서 입소문 난 정보를 얻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단골 미용실이나 관리숍 원장 개인번호를 알아두면 좋다. 나는 피부관리숍 원장에게 한 철학관을 접수받고 당일 출발했다. 예약이 안 되는 그곳은 무조건 가서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내 앞에는 한 아주머니가 상담 중이었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어서인지 여름이어서 인지 상담내용은 다 들렸는데 흡사 이러했다.     

“아들 배 아프다 하지 않아?”

“어! 맞아! 맨날 장염에 뭐에 뭐에..”

“한 번 갔다 왔지?”

“아니?”

“다행이네.”     

집에 갈까 싶었다. 고민하던 찰나 아주머니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오셨고, 나는 조금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들 ‘듣고 싶은 말’을 들으러 오는 거 아닐까?

역시 철학관 아주머니는 아빠가 평소 건강만 잘 챙기시면 무탈하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 주셨고 나는 뒤이어 다른 곳을 또 찾지는 않았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곳. 힘들 때 찾는 곳. 희망을 주는 곳.

그런 곳이 철학관이나 점집은 아니어야 하는데.

조금 싱숭생숭해진 마음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밝은 목소리에 괜히 응석 부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나온다.

그래도 돈 그런데다 썼냐는 잔소리 들을까 봐 아빠 사주 세 군데에서 봤다는 말은 끝까지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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