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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현 Jan 13. 2019

애증의 히말라야, 십자인대 그리고 두려움

[ 타인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게 놔두지 마라 #3. ]



지난 시간에 이어서 다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지난 포스팅: https://brunch.co.kr/@annaelisase/26)

창업을 이야기하는데 다친 얘기는 왜 할까 싶을 테다. 하지만 히말라야의 상처와 창업 동기는 연관성이 크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람을 위한 일을 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회사를 들어갔을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회사 배를 불려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사회를 위한 일도 아니었다. 나만의 일을 통해 성장하고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뭔지 모를 두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에 제대로 시도하지 못 했다.

2013년 12월 9일 히말라야로 떠날 때, 나는 몸이 힘들면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에서 벗어나 가장 밑바닥 단 하나의 소망만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찾기 위해 굳이 그 멀리까지 간 것이었다. 
그 당시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히말라야를 떠났는데 내가 나레이션을 맡았었다. 지금 봐도 그 때의 절박함을 살짝 느낄 수 있다. 
https://vimeo.com/82487475


(히말라야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다른 매거진에 더 풀어보겠다.
오늘은 창업의 계기를 설명하는 날이다.) 


그런데 몸을 너무 혹사시킨 게 문제였다. 그 당시에 쓴 일기가 그때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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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일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즐거운 신년 맞이 전 나의 연말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네팔을 다녀와서 새해를 맞기 전 12월 30일.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무릎을 붙잡고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나는 병원을 찾았다.

이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지.
내 나이 이제 겨우 28살
나는 선수 생활을 한 적이 없다.
그냥 평범하게 공부해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나의 무릎 X-ray를 보시더니
선수 생활을 했거나 할머니들이 이런 종류의 무릎 상태를 보인다고 하시네.

  "전 둘 다 해당이 안되는데 그럼 전 뭔가요?"
  "그건 뭐 유전적으로 약한 거죠."

유전이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빼도박도 못하는 말

수술을 하거나 주사 요법을 통해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데,
수술한다고 완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건가.
내가 나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무관심했던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난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이제 드디어 산이 좋아져서 전국에 있는 명산은 다 돌아보고자 마음 먹었는데.
세계 일주도 하고 싶었는데.
의사는 유전적으로 취약한 부분이니 당분간 조심해야 한단다.
물론 관리 잘해서 차츰 차츰 운동하면서 개선해가면 된다고도 했다.

연말에 혼자 입원해서 쓸쓸한 병실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는 것은
그리 아름답거나 훈훈한 장면은 아니었다.
사실 외로웠다기 보다는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이야기 할 기력이 없어서 혼자 있고 싶었다.
부끄럽고 민망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얘기하지도 못했다.
퇴원한 후 겨우 엄마에게 얘기했을 때는 역시나,
  "항상 무모하게 행동해서 일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만드냐!"
며 한 소리 들었다.
서러운 건지, 스스로에게 미안한 건지 나는 가슴 응어리 진 부분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
누구에게나 취약한 부분은 있다.
그걸 극복해서 목표를 이루는 것은 결국 나에게 달려있는거야.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치료하고 조심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밤이 되니 통증이 더 심해졌다.
주사 맞은 부위가 아파오고 거기다 허리와 발목까지, 관절 마디마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12월 31일 밤 12시 새해를 맞이하여 여기저기서 온 문자가 울리는데,
나는 안녕하지 못했다.
나의 몸은 발광하고 있었고, 가만히 누워 있는데 느껴지는 통증에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겨우 잠들어 1월 1일 아침을 맞이했다.
여전히 나의 통증은 그 자리에 있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혼란 속에서
신년에는 무엇을 우선 순위로 하여 전진해야 할까 고민하지만,

나는 팔딱거리는 심장을 갖고 살아있다.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아직 나는 걸을 수 있는 두 다리를 갖고 있고,
멀쩡한 두 팔이 있어 자유자재로 책을 보고 핸드폰을 만지고 글을 쓸 수 있다.
코로 편하게 숨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며 시력도 괜찮다.

나에게 주어진 선물을 내가 이제껏 간과하고 있었을 때
그건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지만,
내가 그걸 축복으로 인식하는 순간 나의 일상은 매순간이 감사함으로 가득차게 된다.

감사합니다.
아플 때 다시 한 번 나의 몸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다시 마음대로 방치해서 이런 사태를 발생시키는 일은 없도록 할게요.

2014년의 시작은 쓰라렸지만,
소중한 걸 깨닫게 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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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잘 관리하면 나을 거다’고 하셨던 정형외과 의사와 6개월 지나 호전되지 않아 찾아간 한의사의 ‘이거 뭐 낫겠나’라는 절망적인 말을 지나, 나는 약 2년 간 재활치료를 하면서 무릎을 다스려야 했다. 1년 동안은 집밖에 주 1회 나가는 것도 버거워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2년 동안 아프면서 생각한 건 이상하게도 세상에 못 할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내가 건강하기만 하다면 두려울 게 무엇이오.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최선을 다하자. 그래서 용기가 생겼다. 창업을 할 용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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