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유대기'에 관하여

관념이 아닌 눈앞에 펼쳐진 여기로

by 이준석


2010년 11월, 내 나이 만 22세, 떠나려는 욕망에 이유를 대지 않았더니 의도하지 않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무작정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왜' 인도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아서다. 나는 유럽 어느 나라의 낭만적이고 우아하며 고전적이면서도 유서 깊고 세련된 것들을 향유하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다. '싼 값으로 해외여행 가능'이라는 정보 하나만으로, 인도 여행에 관한 여타의 정보 탐색을 게을리하기에 충분하다. 비행기 한 번 타본 적 없었는데 비행기를 타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나를 이해해 볼 수 있는 틀이 생긴 지금에서야, 인도로 여행하기로 한 선택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나의 기질적 선호에 반응한 행위'로 이해해 보기도 한다. 내가 이동할 수 있는 영역을 '해외까지' 확장해 보는 그 시도 자체에 상당한 쾌감과 짜릿함이 있었음을 회상한다. 그렇게 나는 인도에서 약 한 달 조금 넘게 체류했다.


여행에서 나는 여러 가지의 대가를 치렀지만, 경험은 나를 변화시켰다. 여행 동안 지나치게 타인 지향적인 태도에 대해 반성해 보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탐색해 보는 것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 이 흥미는 내가 '임상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왜 인도인가?', 열심히 이유를 대지 않은 것은 나의 선천적인 기질 탓일 것이다. 낯섦이 두려워도 어떤 즐거움과 흥분이 있을지 궁금한 나머지 접근하는 기질이다. 게다가 다소간의 충동성은 여타 정보의 탐색을 게을리하고 흥미의 가치에 즉각 반응하도록 이끌었다. 그 덕에 인도 여행을 선택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고 그 선택이 내 삶에 뜻하지 않은 변화를 주었다. 마음이 하는 일에 여러모로 '왜'냐고 묻지 않았던 시도가 인도 여행을 선택하도록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뜻깊은 변화와 함께 진로 선택까지 영향을 주었으니, 인도여행은 경험을 통해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낸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유대기를 멈추는 것과 지속하는 것은 배경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인도로 여행지를 선택했던 내 사례에 있어 이유대기를 멈추는 것이 즐거움을 쫓는 데 이득이 있었기에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 것에 효용이 높았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행지 선택부터 '왜'의 질문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인도 말고 값싼 비용의 여행지도 많은데, 왜 인도여야 하지?'로 시작된 질문은 '가면 뭘 경험할 수 있지?', '가면 무엇을 먹을 수 있지?', '음식은 맛있나?', '치안은?', '숙박 시설은?', '혹시 모를 위험이 발생한다면?' 등등... 생각의 연쇄가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는 여행지를 선택할 때 '값싼 비용'이라는 정보 이외에 고려해야 할 정보는 굉장히 많을 수 있고 그렇게 탐색하는 행위가 여행 만족에 미치는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인도로 여행지를 결정할 때 왜인지 반복적으로 묻는 '이유대기'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을지언정, 막상 여행이 현실이 될 때 왜냐고 수 없이 질문했다. 이유대기인 '왜' 말고도 다양한 의문사들은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왜 그곳을 가야 하지?',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여기에 가면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언제 출발할까?', '누구를 만나야 하지?', '저 사람은 뭘 원하는 거지?' 등등...


동시에 이러한 의문사는 '왜 하필 여기 와서 이 고생을...', '아 짜증 나, 왜 저따위로 행동하는 거야?', '왜 그걸 골라가지고 돈 아깝게...' 등등... 마음과 경험에 이유를 대며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여행에서 겪은 모든 경험에 의문사를 붙이는 것은 여행의 적응과 만족을 높이는 데 잘 기능하기도 또는 잘 기능하지 않기도 했다.


흔히 여행을 삶의 경험의 표상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여행의 경험을 삶의 경험으로 일반화하여 태도에 변화의 단초가 되는 사람이 있는데, 나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인도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왜'의 질문은 여행지를 벗어난 지나간 나의 행적을 향하기도 했고, 불현듯 떠오른 미래의 걱정에 대한 왜이기도 했으며, 여행 중 만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그냥 관습적으로 했던 버릇이기도 했다. 나는 여행 동안 이러한 이유대기의 습관이 결국 나를 병들게 했다는 것을 차차 알아가게 되면서 나는 보다 건강하게 이유 묻기를 '선택'하는 시도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유대기를 멈출 때와 해야 할 때를 분간하고 실천하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왜'의 질문을 멈춰야 할 때와 질문해야 할 때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고 잘 구분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며 이것을 구분하는 행위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제 오래 전의 나의 여행기 과정들을 돌아보며, 내가 이유라는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 지금 여기를 향유하려는 시도에 독자들도 동참해보았으면 한다. 이를 통해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생애 첫 비행기 탑승, 비행기에서 마신 맥주로 붉게 달아올라 뜨거워진 양볼의 감각과 가슴 두근거림이 좋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