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석 Nov 13. 2024

기꺼이 경험하기

마음이 하는 일

마음에서 빠져나올 단서는 지금 여기의 나의 감각에 있다.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오감에 기꺼이 머무는 것이다.

오감이 지나가는 흔적을 마음의 눈으로 따라가며 현재의 경험을 오롯이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마음이 하는 일이다.




암리차르로 향하는 인도의 퍼스트 클래스 열차 안, 승무원이 따뜻한 오믈렛, 빵과 티를 내어 준다. 반추하는 생각은 잠시 먹을 것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일단 먹자, 그것도 맛있게. 약간의 포만감이 만족감을 준다. 큰돈 지불한 것이 괜찮지는 않았고, 실내 공간의 쾌적함과 음식은 만족스럽다. 나의 마음은 좋은 것, 나쁜 것을 딱 잘라 구분하지 않는 듯하다. 불쾌감과 유쾌감이 공존하는 퍼스트 클래스 열차. 그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으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여기에 다양한 감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내 옆 자리에 앉은 인도인은 꽤나 점잖다. 멀끔한 차림에 영자 신문을 펼쳐보는 그는 아침 이른 시간부터 어디론가 이동한다. 비즈니스맨이겠지. 그런데 이 사람은 내가 조금 전에 거금을 사기당해 일등 열차 칸에 어울리지 않는 추레한 복장차림으로 여기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알까? 그 사람은 여기 앉아 있는 내 사정을 당연히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서 속았는지, 그들이 얼마나 감쪽 같이 나를 속였는지, 당신도 낯선 타국에서 왔다면 필히 당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그 사람에게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내 옆의 그 남자는 나를 모르고 나도 그를 모른다. 나의 부끄러운 마음은 나는 알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조차 그 부끄러움은 원래의 내 것이 아니라고 설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마음속 깊은 수치심이 명치 부근 깊숙한 어딘가의 경계를 뚫고 나와, 내가 열차 공간에 오롯이 담겨 있지 못하게 나를 어디론가 잡아끌고 갈 것만 같다.


명치의 깊숙한 어디쯤에서 느껴지는 뜨거움. 수치심은 그곳에서 움튼다. 그 명치의 감각은 이내 머리까지 간지럽히며 기묘하게 달뜬 상태로 만든다. 낯설지 않다. 이 느낌, 과거의 치욕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한 이 감각은 내가 현재에 머물지 못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나는 감각을 따라가며 알아차린다. 그리고 선택한다. 이 감각과 연결된 수치심과 함께 기꺼이 열차에 머물겠다고. 창밖을 보고, 옆 자리의 신사와 눈을 맞추며 답미소를 보인다. 맛있게 먹은 음식물에서 나온 쓰레기를 정리한다. 수치스럽지 않은 게 아니다. 수치스럽고, 나는 여기 암리차르로 향하는 일등 열차에 있다.


그렇게 나는 암리차르에 도착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