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암순응
캄캄한 터널에 무엇이 나올지 두려워 눈을 꼭 감고 있으면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고 한 발자국 움직이기 힘들다.
신체는 부동이지만 마음은 방황하고 불안은 더 커진다.
어둠 속 부동과 방황의 불균형을 이겨내는 방법은
시각적 암순응을 통해 어둠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때로는 삶이 거대한 어둠으로 다가온다.
어둠이 그리는 불확실한 미래 그 어디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어둠으로 가려져 혼탁해진 마음의 눈을 뜨는 것과도 같다.
시각의 암순응처럼 우리의 마음도 눈이 있으며 어둠에 순응한다.
평온함을 주었던 암리차르의 하루 일정을 마치고, 나는 인도의 밤 열차를 타고 하르드왈(Haridwar)로 넘어가기로 한다. 밤 10시 15분에 출발해, 다음날 아침 7시 30분 도착하는 SL 클래스의 열차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다.
밤이 된 암리차르 역의 플랫폼은 너무나 어둡다. 연락할 사람도 없고, 심지어 인도를 찾는 유럽 여행객들이 꽤 많음에도 여행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인도에서의 기차 탑승은 두 번째인데 직전의 델리 기차 사기 사건이 재연되기에 충분히 가까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기차역 플랫폼에서 맞이하는 깊은 밤은 나를 불안으로 내몰았다.
하르드왈로 가기 위해서는, 내가 타야 할 특정한 열차가 이 짙은 어둠을 뚫고 10시 15분 어간에 올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내 눈앞에 당도한 열차에는, 티켓에 적혀 있듯이, 내가 구매한 SL 등급의 좌석이 확보되었을 것으로 믿어야 한다(긴긴 새벽을 앉아서 갈 수 없으니 말이다!). 열차표에 인쇄된 열차 번호, 플랫폼에 있는 안내 표지판 등 가용한 정보를 믿는다. 결국, 열차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둠을 또다시 뚫고 나가다 아침이 밝을 때쯤 하르드왈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기차가 향하는 어둠 속에 내 중간 목적지가 있다는 걸 믿는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끌어안은 채, 내가 원하는 것이 어둠 그 어디에 있음을 받아들인다.
어둠 속으로 내달리는 기차 기차는 어둠을 향한다. 아주 적극적으로... 인도 야간 열차의 SL클래스, 여행객이란 찾아볼 수 없는 열차 안에서, 까까머리 동양인을 보는 인도인의 호기심과 경계 어린 낯선 시선이 두렵다. 백팩의 지퍼 고리를 자물쇠로 연결하고 잔뜩 긴장한 채 열차 상칸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아침의 열차 사기 사건으로 시작한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수많은 정보, 감정의 요동침, 평온함, 안락함, 충만함, 불안, 외로움 그 모든 게 뒤섞여 이 열차 안의 공간을 무겁게 만든다. 공간 주변으로는 궤도를 내달리는 열차 바퀴의 마찰 소음, 매캐한 매연 내가 후각을 살짝살짝 자극한다.
그냥 돌아갈까 생각도 드는데 나쁘지는 않다.
살면서 내가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온전히 느껴본 때가 있었나 싶다.
피로감은 선잠을 이끈다. 나는 열망으로 어둠을 직시한 두 눈을 감는다.
그렇게 어두움과 두려움이 가득한 열차는
하르드왈의 아침과 함께 밝음과 평온함으로 채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