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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만들기

듣기, 보기, 먹기, 마시기, 앉기 혹은 걷기

by 이준석


낯설고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작은 행동들을 의도한다.

불확실한 환경에 일상이 자리하자 차차 온유함이 깃들고,

낯선 자극은 이내 친숙함을 드러낸다.




과거가 되어버린 델리의 아침과 암리차르의 밤,

열차는 지금 여기에서 하르드왈의 아침을 열어 둔 채

또 다른 현재가 될 미래를 향해 어디론가 향한다.


낯설고 불확실함으로 가득한 이곳, 인도

인도는 내가 사는 세상의 일부이다.

내가 사는 세상의 현실은 불확실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규칙이 있다.

과거와 미래는 왜곡과 불확실성이라는 굴레를 갖지만

현재, 지금 여기에는 확신을 만들어 내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해가 뜨고 밤은 온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감기 전까지의 지금 여기에 일상을 만드는 의도를 갖는다.


인도 4일 차,

여행에서의 실수와 판단 착오와 관해 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왜곡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여기에 펼쳐진 하르드왈의 지금을 나는 어떻게 맞이할까? 하르드왈은 갠지스강 상류에 위치한 도시로, 나는 하르드왈의 대표 가트인 하르키파우리(Har Ki Pauri)로 향한다. 가트로 향하는 길목을 거닐며 곳곳의 상점들을 눈에 담는다. 배가 고프다. 골목 어느 상점에서 적당히 먹을 만한 것들을 먹어보기로 한다. 기름에 튀긴 짜파티, 카레, 달달한 설탕덩어리 디저트(?)는 괜찮은 맛이다. 카레는 옳고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식당 내부에서 골목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관찰한다. 그들은 서로서로 부대끼고 엉키며 저마다의 사정을 나누면서 어디론가 향한다. 그릇을 비우고 나도 그 부대낌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다시 걷는다.


힌두교인들은 갠지스강을 신의 은총을 베푸는 여신으로 여긴다고 한다. 모든 것을 품고 받아주는 어머니처럼, 인도인들은 어머님 품 안인 이 갠지스 강물에서 속세의 죄를 씻고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인도 전역의 수많은 인도인들은 자신이 혼탁하다고 여기는 영혼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갠지스 강에 몸담는 날을 고대한다.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하르키파우리 가트에 도착한 나는 가트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가트를 끼고 흐르는 혼탁한 갠지스강에 몸을 담근 채 기도하는 사람들, 혹은 목욕을 하는 사람들 더러는 빨래를 하는 사람 등등 각각 갠지스강을 대하는 저마다의 방식을 바라본다. 힌두교인들의 의식과 삶이 강을 따라 흐른다. 이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치를 눈으로만 맞이하기가 너무 아쉽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이들의 영성적 가치의 공기를 내 몸으로 담고자 한다.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듣고, 주변 환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배가 고프고 맛보고 싶으면 먹고, 더 느끼고 싶으면 공기를 마시고, 움직이고 싶으면 걷고, 지치면 앉는다. 나의 의도에 묘한 즐거움이 움튼다.


불확실함을 대비하기 위해서 다음 계획을 세우며 고민하는 굴레보다는

현재 내 오감이 반응하는 감각에 의도를 품고 그것을 따라간다.

그렇게 여행은 잠시의 일상을 만들고 일상이 자리한 불확실한 환경에는 온유함이 깃든다.

낯선 자극은 이내 친숙함을 드러낸다.


여행은 만족스럽다. 그리고 내 삶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다.

인도 여행은 오늘처럼,

내 삶의 여정도 가급적 인도 여행처럼 살아가기로 한다.




식당에서 먹은 음식들, 주인장과 아들(?)



하르키파우리(Har Ki Pauri) 가트, 사람들은 겐지스강에서 각자의 의식을 치르고 삶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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