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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과 맨발

상징과 감각

by 이준석

상징을 감각으로 맞이하는 시도는

시공간에 온전히 머물게 하는 최적의 구체적 행위이다.




나는 신발을 벗고 간단히 발을 닦은 뒤,

시크교의 영성적 가치의 대표 상징인 암르차르의 황금사원에 들어선다.

맑은 하늘, 많은 사람들이 사원을 드나들면서도 소란스럽지 않다.

입장하기 위해서는 두건을 착용해야 하고 맨발로 입장해야 한다.

시크교인 정체성인 칼사(Khasa)의 가치를 최소한이라도 내면화하기 위한 절차이다.

입구에서 신에 대한 겸손과 경의를 담아 내 방식대로 합장과 반배를 행하고

시크교인의 용맹하고 강건한 자태를 눈에 담으며 나 또한 용기, 평등과 봉사의 가치를 떠올린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는 않으나, 나는 상징을 감각으로 맞이하는 시도는 믿는다.

내가 양발로 서 있는 이 대리석 바닥에서 전달되는 감촉,

나를 둘러싼 공간의 자극들 그 공간과 자극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인지하는 그 현재의 감각이다.


황금빛 사원, 하얗고 투명해 시원함을 주는 발바닥의 감촉,

질서 있고 절제된 사람들의 행동, 매연이 없이 비강 사이로 흐르는 공기의 감촉, 사원에 담긴 잔잔한 물결 등이 내 오감에 닿는다. 어느덧 청명한 하늘빛은 석양으로 변화하고 저녁의 어스름을 사원의 전등으로 밝힌다.


흐르는 시간을 감각이 따른다.

시크교인들이 강하게 믿고 있는 영성적 가치를 연결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가치를 체험한다. 영성은 이렇게, 지금의 감각과 지각에 뿌리를 두고 지금까지는 내게 닿지 않았던 신에 대한 믿음을 존중하며 실현된다.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함, 안락함, 이완되고 조절되는 마음이 묘하게 따뜻하고 즐겁다.

나는 인도에 혼자 왔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다.

내면의 말이 나에게 닿고, 그 말을 특별한 의미 없이 흘러가도록 둘 수 있다.


돌이켜 봤을 때 상징으로 가득한 이곳을 몸에 담으면서, 이때 흘러다닌 여러 가지 생각 중 처음으로 인도에 오기 참 잘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암리차르의 경험은 지나간 불편감도 앞으로 올 즐거움도 또다시 겪을 고통, 불안, 분노, 외로움에 나를 준비시켰다.


암리차르는 내게서 상징적인 경험들을 감각에 담고 현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일전에 내 마음에 일었던 수치심과 부끄러움은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어디론가 흘러가버렸다.

언젠가 어떤 자극에 의해서 그 감정은 또 나타나겠지만, 부드럽게 마주해 포옹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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