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받아들이자 외롭지 않게 되었다.
외로움은 경계를 허문다.
무너진 경계의 틈 사이로 따스함이 비집고 들어온다.
델리, 레드 포트 탐방의 소회.
역사적 건축물인 레드 포트는 16세기 초 무굴 제국이 들어서며, 기존 힌두 문화기존 세력들을 통치 하에 두기 위해 탄생했다. 배우자의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휘황 찬란 인도의 유명 건축물 타지마할도 이 무굴 제국 시기에 생겨났다고 한다. 압도적 규모와 함께 페르시아, 인도 전통문화 양식을 정교하게 통합해 낸 내부 건축 장식을 보자 하니, 아름다움은 때로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강박적인 시도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나는 경이에 찬 눈빛으로 건축물 내부 곳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광활하게 펼쳐진 무굴 제국의 위용을 바라본다. 동시에 다음에 맞이할 자이푸르(Jaipur)/조드푸르(Jodpur)로 향하는 발걸음이 기대감으로 한껏 부푸는 것을 느낀다.
나는 델리를 뒤로하고 밤기차를 타고 자이푸르로 넘어가려 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낮시간의 관광은 금방이라도 머리를 뉘이면 잠에 들 것 같은 피곤함을 준다. 눈을 감자, 나는 델리에 입국 후 이틀 동안 사기꾼들과 상호작용했던 일을 제외하고 줄곧 혼자였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이내 헛헛한 느낌이 마음에 맺힌다. 외로움인가 싶다. 그를 부인하듯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어본다. 평소에도 나는 미소를 많이 짓는다. 내가 짓는 미소는 누군가가 내 외로움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신호인 걸까?
시선과 협응 된 미소는 어떤 인도의 가족에 가 닿는다. 그 가족의 두 남매는 나를 보며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은 자신들의 부모를 향하고 가족들은 무어라 대화를 하며 나를 흘긋 흘긋 쳐다본다. 그 어머니는 나에게 부드럽게 손짓하며 그들의 영역 안으로 초대한다.
외로움은 경계를 허문다. 허물어진 경계의 틈 사이로 어머니의 손짓이 파고들어, 주변에 내려앉은 어둠을 조금씩 밀쳐내 내가 다가갈 공간을 만들어 준다. 발걸음은 가족을 향하고 그들은 더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한다.
가족은 자신들이 선량한 사람이라는 신호를 전하기 위해 온기 가득한 시선과 부드러운 말투로 어눌한 나의 음성에 호응하고 웃어 보인다. 두 아이는 내게 비스킷을 건네며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로 향하는지 등등 질문한다. 나에 대해 그리고 내 조국에 대해 피상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 언어적 한계를 아쉬워한다.
얼마 뒤, 자리를 깔고 앉은 다섯 형제가 나를 부른다. 어머니의 손길과 사뭇 다르게 그들의 부름이 다소 거칠게 느껴졌는데, 그들이 풍기는 외향이 굉장히 위압적이긴 하다. 가봐도 될지 머뭇거리는 동안, 나름 안전 기지인 부모의 표정을 확인한다. 나의 흔들리는 동공의 의미를 파악한 그들은 크게 웃으며 가봐도 좋다고 말한다.
그 형제들과 나는 언어가 다르다. 그러나 비언어는 통한다. 그들은 오랜 기차 여행을 하면서 오늘은 플랫폼에서 밤을 보낸다고 한다. 나도 여행자고 그들과 다르지 않다. 인간으로서 연결되고자 하는 호기심은 서로의 몸짓을 이해하고자 애쓴다. 잠시였으나 그들과 연결되었음을 오랫동안 남기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외로운 시간을 기꺼이 함께 해 준 호의를 기억하고 싶어 무언가 선물하고 싶은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500원 동전뿐이다. 동전을 건네자 그들은 거절한다. 나의 순수한 의도가 그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다는 부끄러움이 치민다.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음을 어떻게 든 해명하고 그들은 비로소 이해한다. 그렇게 우정을 나눈다.
자이푸르행 밤기차가 도착했다. 이제는 가족과 형제들과 헤어진다. 열차로 들어가려는 순간 형제 중 한 명이 내 팔목을 세게 붙잡는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기차표를 확인한 뒤 내 배드가 위치한 열차칸을 향해 앞장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열차칸에 당도하자 그는 크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도 웃으며 마음을 담아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는 다시 플랫폼으로 돌아간다.
델리의 마지막 밤, 앞으로 영영 볼 가능성이 없는 그곳에서 만난 가족과 형제들. 그들은 특별한 목적 없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단지 그렇게, 인간이 인간과 연결되고자 하는 그 순수한 연대감을 실현한다. 짧게나마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보이는 외로움과 쓸쓸함에 연결되어 보듬어 주고 싶었나 보다.
나는 외로움을 마주할 때 비로소 외롭지 않게 되었다. 타인과 연결되기로 한 선택과 그 선택에 호응해 준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낀다.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밤의 기차 안에서 벅차오르게 뛰는 심장의 감각에 머물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