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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에...

작은 홍수

by 이준석



유연하게 움직이는 마음을 보라,

모든 것은 변화한다.

내 마음 또한 그러하다는 점이

유쾌하고 즐겁지 아니한가.




조드푸르의 마지막 아침, 아그라(Agra port)로 향하는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 플랫폼으로 향한다.

이동 중에 짜이티나 라씨를 파는 곳이 있으면 잠깐 들러서 마시는 것은 인도 여행의 일상이다.

고삐 없이 길을 배회하거나 인도 위에 엎드려 쉬고 있는 소들도 이제는 놀랍지 않다.


역까지 걸어가려고 하는데, 간밤에 빗물이 길에 잘박하게 배수가 되지 않고 있다. 쓰레기, 모래, 먼지 등과 어우러져 황톳물이 된 물이 슬리퍼 내부로 스며들어 발을 촉촉이 적시는 감각이 불결하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광경을 보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 많지 않았던 강수량에도 작은 홍수가 발생하는 이곳과 대조적으로 한국 생활 중 이런 유형의 불편함을 마주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반대로 이곳 현지인들은 한국에서의 당연한 편의를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런 한국의 사회생활기본시설이 당혹스러우면서도 불결함과 다른 감정을 내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홍수도 매번 발생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날 유독 하수구에 이물질이 많았던 것이 홍수를 유발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의 경험이 내가 인도에서 경험하지 않았던 앞으로의 미래 혹은 지나간 사건으로 까지 연결될 이유나 근거는 없다. 그냥 오늘 아침 간밤의 비로 홍수가 나버려 오염된 물이 내 발을 더럽혀 불결하다는 것, 거기까지가 내가 경험한 유일한 그날의 현실이라는 것을 의식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늘 당연하게도 그리고 마땅히 그렇게 기능해야만 할 것 만 같은 주변 사건과 하루가 그렇게 작동하지 않을 때면 불쾌하다. 지난날의 불쾌함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 왔는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마땅히 그래야 함을 강조하고 강요하면서 불쾌함을 부축이지는 않았을까?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내 주변이 아닌, 잠재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외부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비롯된 일 수 있겠다.


더럽혀진 홍수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유연해질 수 있음을 바라보는 일은 꽤나 흡족한 경험이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에 그 변화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에도 유연함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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