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단상
가치와 의미는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목표를 낳고 행동의 이유가 된다. 가치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공유되고 함께 이해될 수 없는 가치는 인정될 수 없다. 가치 선택은 자유이나, 조화될 수 있어야 한다.
타지마할은 인도 16세기 무굴제국 샤자한 황제의 지시로 건축된 왕비의 무덤이다. 왕비 뭄타즈 마할은 황제의 세 번째 부인이었고 출산 중 사망한다. 샤자한은 아내를 잃어버린 비탄을 세계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무덤을 통해 사랑의 가치로 승화시켰다.
사랑의 마음을 기리는 무덤,
나는 사쟈한의 사랑의 표현 방식이 이해되지 않는다.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갑질 중의 갑질이자, 자원 낭비, 국고 낭비, 인력 낭비이다. 사랑의 탈을 쓴 권력 남용, 권력의 사유화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인도는 그가 권력을 남용한 덕분에 후대에 문화유산의 지위를 가진 관광 명소를 얻는다.
샤자한은 해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아름다움을 갖춰가는 무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사랑의 가치가 후대에 걸쳐 영속되리라고 믿었을까? 나는 밝게 빛나는 웅장한 대리석 조각들, 화려한 장식과 대칭구조 등을 목도하면 경탄하지 아니할 수 없다. 동시에 그것이 무덤이라는 사실이 머리에 스치면, 사랑의 온기가 온데간데 없어지고 아름다움을 빙자한 권력의 폭력에 몸서리 쳐진다. 사랑의 마음을 기리는 아름다운 무덤이라는 개념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병리적일 만큼 그의 강박적이고 집착적인 왜곡된 사랑의 실천 방식이 당대의 수많은 백성의 삶을 곤궁하게 만들었을 것이 상상된다.
가치와 의미는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목표를 낳고 행동의 이유가 된다. 샤자한이 타지마할을 건축한 이유는 사랑의 가치에 닿기 위함이다. 22년에 걸친 공사는 당시 백성의 생존권을 위협했겠지만, 그 아내가 죽어서도 그녀를 찬란하게 사랑하리라는 그의 가치는 자신에게서 만큼은 옳은 것이었겠다.
그러나 공유되고 함께 이해될 수 없는 가치는 인정될 수 없다. 가치 선택은 자유이나, 조화될 수 있어야 한다. 타지마할에 담긴 사랑의 가치는 타인의 존엄을 해칠 만큼 폭력적이었기에 영속되지 못했고 껍데기만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 일회성 경탄에 그칠 뿐, 그의 사랑에 관하여 감동하는 현대인은 없다. 그렇게 그의 사랑의 가치는 현재에 이르러 절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