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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본질에 다가가기

비탈길 1, 뜻하지 않은 비포장도로

by 이준석

원하는 목표에 무탈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관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좌절에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좌절은 친구요. 삶의 일부다.


자신의 바람에 순탄하게 다가갈 수는 있는 삶은 평연하지 않다.

필연 목적지까지의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으리라.

굴곡지거나 비탈진 길은 힘들고 불편해 때로는 꽤나 좌절스러운데,

그것이 그 길의 본질이다.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지...

갖은 이유를 들어 고통의 본질을 왜곡하고 싶어 하니까.

'이 목표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이것도 못 견디는 건 내가 나약한 거야.'

'누구라면 잘했을 텐데.'

'그 사람은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누가 이딴 식으로 길을 만들었어!'

'이 길 너무 쉬운 거 아니야? 하나도 안 힘들어'

'이런 길을 다니는 난 역시 우월해!'

'세상 참 X 같아!'


본질을 왜곡하는 충동은 고통에서 멀어지게 되어

돌보고 보듬고 관심주어야 할

나의 아픔, 그의 아픔 그녀의 아픔, 그들의 아픔, 우리의 아픔, 모두의 아픔과

연대하지 못하게 한다.




어둠이 내린 아그라 기차역의 밤.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시간과 장소에 내가 남아 있다.

목적지에 닿을 수 없는 시간의 아쉬움보다

감지된 위협에 나는 촉각을 곤두 세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본능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사고의 중재는 나를 위기에서 탈출하게 한다.

본능적 감각은 불안으로부터 내가 안정될 수 있는 안전한 피신처가 필요함을 알린다.

나는 어제 묵었던 숙소로 일단 돌아가 긴장되고 두려움 반응을 잠재운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두 가지 정보원 Trains At a Glace와 Lonely Planet을 펼쳐 아그라에서 바라나시까지 갈 수 있는 다른 우회 경로를 찾는다.


먼저 아그라 칸트에서 잔시까지 오전 시간 열차를 이용한다.

그리고 잔시에서 카주라호로 향하는 로컬 버스를 타고 카주라호에서 일박을 한다.

카주라호에서 일정 관광을 하고, 카주라호에서 바라나시로 향하는 하는 밤 버스로 새벽에 바라나시에 도착하는 경로를 설정한다.


나는 두 정보원을 믿어야 한다. 분명 그 경로대로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을 것이고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흔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좌석이 이용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믿자, 그리고 직접 마주하자!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 나는 아그라 칸티에서 잔시로 향하는 II 열차를 탄다.

역사를 향해 오는 열차의 외형에서 나는 놀라움, 흥분 그리고 당혹감에 휩싸였다.

에어컨이 없는 II 열차칸 수많은 인도인들이 열차에 가득 차 있었는데,

사람들은 통로는 물론이거니와 좌석 위의 짐칸까지 앉아있다.

상상할 수 없는 그 풍경에 헛웃음이 난다.

그들도 II 열차칸에서 여행객을 볼 일이 없었는지, 유일한 여행객인 나를 굉장히 생경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내 자리에는 예상대로 인도 승객이 차지하고 있고 짐칸에도 사람이 있어 백팩도 가슴 앞으로 안고 있어야 한다. 내 자리로 추정되는 그곳을 차지한 인도인이 나를 보고 선심 쓰듯 작은 틈을 내어주며 미소 짓고 나는 멋쩍게 웃음을 지어 그 틈에 몸을 끼워 둔다.


불쾌함, 당혹감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렇게 탈 수밖에 없는 것을 서로 용인하는 그 공간의 규칙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수용은 시야를 넓힌다. 그러자 그들의 표정과 행동이 더 자세히 지각된다. 언어로 소통할 수 없는 우리, 많은 인도인들의 눈빛과 비언어적 행동은 내가 최대한 불편하지 않았으면 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내 자리를 주변을 차지한 그들 무리는 나를 향해 계속 미소 짓는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하며 손에 쥐고 있는 소니 MP3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궁금해한다. 그들의 표정과 행위에 나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호기심이 반갑고 편안함을 느낀다. 내가 듣는 음악을 그들의 귀로 전달하자, 무슨 이런 음악을 듣는지 통 알 수 없는 듯한 그들의 표정이 나를 즐겁게 한다.


분명 불편하고 피곤한 경험이나 그들의 선의를 나는 온몸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의 환경을 수용하니 나의 불편함과 주변을 선의와 온기를 통합하여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긴다.


나는 불편하고 그리고 즐겁다.




낮 시간의 로컬 2S 열차, 내 자리에 앉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지 인도인들의 틈에서 나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잠시나마 허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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