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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주제에 머무르기

아그라 관광을 마무리하며

by 이준석


아그라의 대표 유적지인 타지마할 관광에 이어 다음날 아그라 포트까지 둘러보는 일정까지 소화한 뒤, 밤 기차를 타고 바라나시로 갈 예정이다. 바라나시는 내가 이번 인도 여행에서 가장 열망하는 곳이다. 바라나시는 갠지스 강변이 흐르는 도시로 강을 따라 가트가 줄지어 있는데, 그 어떤 곳보다도 인도인의 생생한 영적 생활을 눈으로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 기대를 모은다. 그 열망에 다가가기 위해, 아그라 역에 도착했을 때 다음날 밤에 떠날 열차표를 구매해 둔다. 인도 여행 전체 여정의 삼분의 일이 지난 이 시점의 나는, 당장의 문제를 적당히 해결해 나가면서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일정을 계획할 수 있다. 인도 여행에서의 문제해결 능력이 발전한 것이다. 인도 델리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계획한 대로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놓아버렸기에, 나는 즉각적으로 내가 머물고 싶은 곳으로 이동하고 그곳에 머무르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적응해 나갔다.

아그라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괜찮은 숙소에서 머물기로 한다. 그동안 화장실이 분리된 방이나 혹은 화장실이 있어도 침실과의 경계가 불분명한 숙박 시설에서 지내느라 좀 고단했나 보다. 숙소 내부에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저녁을 간단히 해결한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여느 때보다 평온하고 반짝이는 정신으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다.


여행의 휴식시간, 마음은 여정의 삼분의 일이 지나간 시간을 자연스럽게 추적한다. 소음이 없는 시간, 그 시간은 내부 자극으로 채워진다. 혼잡하고 시끄러웠던 도심에서 떠나 고요하고 조용함이 주는 안정감과 차분함도, 두려움을 직면했을 때 비로소 외롭지 않게 되었던 그 순간도, 낯선 이국 땅의 웅장하고 멋진 과거의 건축 양식들도, 내 마음에 맺힌 것들은 모두 다 내 것이다. 인도에서 흘러간 시간들은 충만하다.


여행을 끝마치고, 인생의 남은 삼분의 이는 나는 뭘 해야 할까? 복학은 하겠지만, 워낙에 불확실한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다. 잠재적 위협과 불편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내가 상상하는 능력을 마비시켰을지도 모른다. 서너 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한국으로 돌아가 앞으로의 삶을 떠올리니 불안하다. 공간이 주는 답답함을 해소하려 숙소를 나가 바깥공기를 한 줌 들이쉬고 내쉬어 봤자 매캐할 뿐이다. 현재를 떠난 마음은 답답함을 해소할 힘이 없다.


인도 여행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선택할 수 있듯, 나는 내 삶을 만족으로 채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현재에 머물지 못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독립적이어도 외로울 수 있다, 독립적이어도 연대는 필요하다. 여기에 나 혼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갑작스럽게 외롭다. 외롭지 않아도 되었는데, 스스로 고립해 왔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생각은 과거로 이동해 잠 못 이루게 한다. 지금까지 생경한 인도의 풍경을 감각으로 담아내고 문제해결에 급급해 피로에 절어 잠들다 비로소 편안하게 자려고 했는데... 불편한 마음이라니, 손해 보는 느낌이다.


아침이 밝았다. 아그라 포트로 향한다. 포트의 외벽 색상은 델리의 레드 포트와 유사하다. 이 또한 무굴 제국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며 인도-이슬람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요새다. 사암과 대리석을 주 재료로 만들어져, 붉고 투명함이 대비되어 시각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내부는 외교적 공간, 공개 회견 장소, 공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소마다 대리석으로 조각된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 기하학적인 식물 문양, 연못과 정원, 벽면 아치 등에 각인된 꾸란의 구절 등이 눈에 띈다. 타지마할과 마찬가지로 이곳은 무굴 제국의 흥망성쇠를 상징하고 건축의 아름다운 뿐만 아니라 극적인 이야기를 남겼다. 샤자한은 왕비의 무덤을 휘황찬란하게 지어놓고 아들에 의해 유폐된다. 샤자한은 성곽 내부의 무삼만 부르즈라는 곳에서 아내의 무덤(타지마할)을 바라보며 8년 동안 갇혀 지냈다고 하니, 가치의 상대성은 한 대 안에서도 달랐나 보다.


아그라의 두 명소를 떠올리면 더할 나위 없이 그 두 곳은 완벽하다. 근데 내 마음은 웅장함과 화려함에 취해있지 않고 헛헛하다. 아그라의 일정을 마치고 밤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찬찬히 이틀 간의 헛헛한 마음을 따라가 본다. 화려하고 웅장한 두 명소에서 느낀 감각적인 만족감을 나누는 대상이 있었다면 이 외로움은 조금 달랐을까? 현실에 대한 걱정, 불안과 두려움이 갑작스럽게 내 마음에 맺힌 그 순간, 함께하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었으면 덜 불안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외롭다는 것을 인정할 때부터 외로움이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회피하지 않는다. 외로움이 불편한 건 당연하다. 간밤의 불편한 감정 그리고 과거의 흔적과 미래의 걱정이 드러낸 상념이 여행의 불청객이 되어 내 앞에 존재한다. '나 혼자서도 잘해요...' 역의존성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 지지와 인정이 내게도 필요하다고, 나도 좀 돌봐주라고.


일단 이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여행 과정 중에 충실히 다뤄보기로 한다. 다시, 아그라의 플랫폼으로 주의를 기울이는데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기차표의 일정이 잘못 되었다. 즉 나는 열차를 탈 수 없다. 예약을 잘못한 탓이다. 열차에서 자다가 눈 뜨면 바라나시겠거니라고 예상했던 일정은 이제 현실이 될 수 없다. 예약된 숙소는 없으며 밖은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이 불안은 위협에 따른 현실적 불안이다. 몸이 긴장한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진 폴더에 인도의 청년과 아이들의 모습이 여럿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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