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대기의 본질 - 인도여행 : 매운맛 델리
이유대기의 본질은 문제를 해결하여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것이다.
인도 여행 시작부터 나는 이유대기를 멈추면 안 되었다.
델리 공항 입국, 수화물 벨트 앞, '나의 백팩은 왜 나오지 않는 것인가?' 초조하다. 여행을 망칠 것 같은 걱정이 든다. 생각보다 늦었지만 다행히 짐은 나온다. 공항 밖을 나왔는데 전면 유리에 총탄의 흔적을 간직한 오토릭샤가 내 앞에 멈춰 선다. '여행 중 총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인가?...'
목적지의 지도 위치를 기사님께 보여준다. 그는 대충 훑어보더니, 연신 오케이를 외치며 미소짓는다. 나는 긴장된 미소와 눈짓으로 화답한다.
비포장 도로를 줄지어 내달리는 릭샤들이 일으키는 황톳빛의 먼지와 매캐한 매연냄새가 나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이 릭샤는 내가 지도에서 가리킨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의심은 끝없다.
내 감각 기관이 불쾌한 자극을 감지하니 생각 또한 부정적으로 향한다.
'공항에서 나와 공황으로 빠지게 될지도 모르겠는걸...'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그가 나를 내려놓은 곳은 목적지가 아니다. 낯선 이국의 땅에서 배회한다. 지도와 공간의 구조물을 대조해 보기를 수십 번 반복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른다. '나는 무탈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의심은 불안을 낳는다. 어찌어찌 목표하던 메인 스트리트에 들어서자, 커다란 백팩을 짊어진 여행객과 현지인들 뒤얽힌 광경이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현지인들은 여행객들에게 붙어 친분을 과시하는 어눌한 인사말이 주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며 청각을 끌어당긴다. 신체의 감각은 곤두서 있다. "어이, 친구 마이 쁘렌드!" 구겨지고 얼룩진 김 아무개의 명함을 들이대는 현지인의 호의적인 미소가 불쾌하다.
그날의 나는 본능적으로 이유를 댄다. 이유대기는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특정 사건이 개인이나 주변 타인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사건과 사건의 관계를 탐색하기 위해 질문한다.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며 사람들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 정보는 저 정보와 어떻게 관계되는지... 인도 여행의 첫날은 사건의 연속 그 자체이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자극들은 문제해결을 위한 조각조각의 단서들이고 그 단서들을 잘 조합해 적응하고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론리플레닛을 수차례 훑어본다. 나의 DNA는 적응과 생존(?)을 위해 내 눈앞에 펼쳐진 문제들을 해결하라 한다. 나는 외부의 자극을 인식하고 나에게 득이될지 해가될지 변별하고 판단하느라 감각기관과 전두엽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그 상호작용의 부산물로 여러가지 감정이 쏟아져 흐른다.
낯선 이국의 땅, 생존 모드 프로그램은 작동한다.
론리플레닛만이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리라. 론리플레닛은 나의 온니 프렌드다. 첫날밤 숙소에서 하루를 마감하며 나의 유일한 그 친구가 말한다. '인도 여행의 정수는 기차여행!', '기차 여행 정보 획득은 <Trains at A Glance>에서...', '내일은 저 기차 정보지가 나의 또 다른 친구가 되리라!'
나의 인도 여행 첫날밤은 매우 강렬한 부정적 정서 경험으로 기억되고 체험된다. 즐기기보다는 살았다는 느낌이다. 양 주먹을 하루종일 꽉 쥐고 있다가 숙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펼칠 수 있었던 그런 긴장감이다. 몸은 지치고 고단하다. 여행 초반부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계획적이지 않아도, 목표한 대로 될 수 있었으면 좀 덜 불안했을 텐데...', '왜 나는 해외여행 준비를 꼼꼼하게 하지 않아서 고생을 사서 할까', '정보 탐색을 좀 더 했어야 했는데 너무 게을렀다...', '왜 여기에 와서 사서 고생이냐...', '앞으로 여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어쩌지?' 등등 다양한 생각의 연쇄와 초조감을 느낀다. 나는 인도에 적응하는 것에 더해 마음이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이유대기를 실행하면서 나를 더 깊은 불안감으로 내몬다.
나는 당시 이유대기를 멈출 수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문제 상황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프로그램화된 이유대기가 불필요하게 마음이 하는 일까지도 작동한다. 이것이 인도 여행 첫날 내가 불안에서 허우적 댔던 가장 큰 이유이다. 지금 여기의 나는 숙소의 침대에서 안정을 취하지 아니하고 마음 안의 생각과 불안에 사로잡혀있다.
인도는 원래 그런 곳이다. 특별히 나한테만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 불쾌감의 정도는 누구에게는 다를 수 있으나 인도에서 처음 경험한 외부의 자극들은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인도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일들은 원래 그렇게 일어난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원래 그래서, 그렇기에 나는 때로 불편할 수 있다. 그냥 불편함을 주는 그곳에 내가 있고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다. 때로는 즉흥적으로 새로움과 흥미를 쫓아서 잠재적으로 두려움에 노출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 나는 원래 그렇게 행동하고 기능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이기에 마음과 욕망이 하는 일들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이 하는 그런 불편함에 왜인지 묻는 것은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난 나의 존재에 대해 불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나의 마음은 원래 그런 모양이다. 네모난 모양의 마음에 왜 너는 동그랗지 않냐고 이유를 대는 그 질문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데 아무런 효용이 없다.
나는 마음이 하는 일에 이유를 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유를 대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