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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조 Jan 13. 2021

안산 등산

약속 지켰다.


엄마는 연대 뒷산이라고 불렀다. 내가 어릴 적 우리가 학교에 갔을 때 엄마도 종종 올랐던 산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데 있는 산다운 산이기도 하다. 해발 295.5미터로 꽤 높다. 한 두 시간은 정신없이 올라야 한다.

아이들 어린이집과 학교가 있는 성미산은 동네의 작은 언덕이다. 사실 나는 성미산 한 바퀴만 돌아도 눈이 빙빙 도는 저질체력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권유 없이 산에 오를 일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천명이 넘고, 정말 우리 일상을 해칠 정도로 위협이 됐다. 작은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았고, 매일 얼굴을 보던 이웃과 거리를 뒀다. 재택근무를 하며 출근조차 사치가 됐고, 아이들은 문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됐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아이들은 집에 머물렀다. 외출하는 아이들이 먼저 마스크를 챙기고, 마스크를 잊고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들은 소맷단을 길게 늘여 입과 코를 막는다. 가까운 놀이터 미끄럼틀은 긴 테이프로 출입을 막아놨다.

금세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남편과 사소한 갈등이 힘들고, 아이들의 높은 음성이 귀를 때린다. 먼지는 시간과 더불어 쌓인다. 난 청소하기가 너무 귀찮은데. 나는 뭐하고 시간을 보내던 사람인지 기억이 안 난다. 바쁘고 즐거웠는데. 뭔가 허무하다.



차가운 산을 오르며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자는 꽤 괜찮은 IPM 멤버들의 제안에 안산으로 갔다. 어제 쏟아진 폭설에 등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날이 따뜻해져 길은 꽤 말라있었다  


오늘도 역시, 나의 동행 안준후/ 앞에 방학인 연호도 있네

데크와 잘 닦아진 길이 얼어 미끄러울까 걱정했는데, 초강력 송풍기로 눈을 쓸어내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눈이

없었다. 심지어 젖어있지도 않았다. 섬세한 관리에 감사하는 마음과 동시에, 눈을 밟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일부러 눈 쌓인 구간 쪽으로 빠져 걷는 프로페셔널한 등산러도 있었지만, 아이를 데려간 나는 곧 쾌적함에 감사를!) 치적 치적 한 녹은 눈조차 없어서 쾌적한 등산로였다. 그래도 어제 폭설로 길만 제외하고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어 캐나다라도 온 듯 만족도 삼백 퍼센트의 산책이었다.


메타세콰이어 길. (안가봤지만) 캐나다나 북유럽의 숲이 이럴 것 같다


준후는 기둥이나 손 닿는 곳에 있는 눈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연신 눈뭉치를 나에게 던져대기 바빴다. 올겨울 눈싸움을 가르쳐 준 것도 나고, 쬐끄만 눈뭉치를 만들어 먼저 던진 것도 나였기 때문에 그냥 맞아줬지만 정말 아픈 것도 있었다. 까불지 마라. 오늘 일행이 있어서 참아줬지만 다음엔 전쟁이다!!


싸우자는거냐??

한 시간이나 걸려서 걸어올라 가는데, 저 녀석 저렇게 눈뭉치를 던지면서 계속 힘들다 연발이다.

"준후야 눈 뭉쳐서 던지는 것만 안 해도 훨씬 힘들지 않을걸."

듣고도 무시한다 걸으면서, 눈을 훔치고, 뭉쳐서 힘껏 던지고 "엄마 나 진짜 힘들어. 업어줘" 하하하 이게 뭐야. 그리고 내가 널 어떻게 업어.


걷기 쉽게 닦아둔 길 냅두고 혼자서 눈산 체험 중 "여기가 안 미끄러워!"


어쨌든 우리는 정상에 올랐다!! 성취감 좋구요~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도 좋다. 준후랑 산에 올랐다고 남편에게 카톡으로 자랑했다. "부럽지~?" 경치도 좋네



정상 정복!!!

내려오는 길에 또 힘들다 하는 준후에게 "그 눈뭉치를 안 던지면 힘들지 않아."라고 말했더니, 잠시 걷다가 "엄마. 정말 눈을 안 던지니까 안 힘드네." 뭐야; 아까 올라갈 때 열 번도 넘게 말했잖아.


아이젠 대신 철수세미: 재사용하려고 했으나 망가져서 재사용은 어려움, 다음엔 그냥 아동용 아이젠을 장만하기로

찬바람에 정신이 드는 듯했으나, 오자마자 힘들어서 준후 핫초코 나 라떼를 쵸코 쵸코 빵과 원샷하고 바로 드러누웠다. 준후는 애정 하는 포켓몬스터 두 편 시청했고.


역시 즐거움은 빡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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