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품다

독서에 마음을 열도록

by 말과맘


1994-1996년 2년여 기간을 호주에서 살았다. 취업을 하기 전 어학연수를 하러 갔다가 시드니대학에서 영어교육학(TESOL) 석사 과정을 도전했다. 학비를 벌면서 공부하느라 무지하게 바쁘게 보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대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독서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을 맞았다.


TESOL 과정은 영어를 제2 외국어로 가르치고 싶은 세계 각지의 학생들이 수료하하는 과정이었다. 한국에서 영문학을 했던 배움이 입학할 수 있는 큰 디딤돌이 되었다. 동기들 중에서 유럽 친구들은 거의 네이티브처럼 영어가 유창했다. 그에 비해 한국, 중국 일본 학생들은 한 결 같이 말을 더듬거렸다. 어느 날 교수님의 질문에 매번 자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잘 내는 이탈리아 친구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 영어 참 잘한다. 얼마나 배웠어?”

“여기 오기 전에 한 3개월 정도. 너는?”

“나? 너보다 엄~청 오래 공부했어. 묻지 마. 부끄러우니까. 하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예습으로 알파벳 26자를 암기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대학 영문학 전공까지 10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다. 아주 열심히. 대학에서는 외국인 교수님들과 영어로 수업을 했다. 겨우 배우고도 그렇게 잘하다니 충격을 받았다. 이탈리아어가 영어와 비슷한 어족이라 쉬운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이 뭔가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시고 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시다가 영어 실력을 더 쌓을 필요성을 느껴 가족과 함께 호주에 오셨던 옥선생님도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꼬맹이들도 호주에 데려 왔거든. 근데 여기 애들하고 학교에서 막 섞여서 노니까 한 3개월 정도 지나니 지들끼리 의사소통이 잘 되더라고. 우리도 애들처럼 배워야 되는데 말야.”


우리 나라의 긴긴 영어공부는 왜 말더듬이로 만드는가. 궁금했고 속이 상했다. 영어로 듣고 말하기 경험이 적으니 현지인과 대화가 서먹했다. 아이처럼 듣고 말하기 경험이 필요했다. 영어의 일상 대화도 우리말 대화처럼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문맥 없이 암기한 그 많은 어려운 단어는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이론적인 원서를 읽을 때에나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 현실에서 사용하지 못할 단어만 주로 암기한 것이었다. 더구나 일상을 표현하는 쉽고 간단한 표현을 터득하지 못했다. 옥선생님의 아이들과 이탈리아 친구가 그들 학교에서 익혔을 일상 회화처럼 우리도 교육에서 먼저 많이 들었어야 했다. 쉽고 빠른 일상의 회화를 듣지 못하고 시험에서 듣기 평가 문제를 푸는 것이 우리가 경험한 영어 대화였다.


듣기 평가처럼 천천히 들리던 말과 순식간에 편리하게 말하는 일상 대화는 너무나 달랐다. 게다가 미국식 영어를 배운 나에게 호주인의 액센트와 사투리는 적응 시간을 필요로 했다. 호주인이신 교수님조차도 미국 여행을 가면 처음에 잘 들리지 않아 적응하는데 몇 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또한 우리나라 영어 수업에게 법전처럼 중시되었던 영문법은 유창성을 상당히 방해했다. 말하기는 따라하기와 과중 중에서 하는 실수가 수없이 허용되어야 자신감을 얻어 연습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말할 때 문법에 맞는지를 점검하느라 오히려 대화 능력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우리말로 아무리 고차원의 생각을 하고 말을 할 수 있다 해도, 영어 환경에서 영어로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면 우리가 가진 능력은 대폭 디스카운트되어 평가받는다.



어린 아이처럼 영어를 다시 시작


이탈리아 친구에게 질문하고 놀란 날, 집에 돌아와 쪽지에 '문법을 잊자!'라고 적어서 내 책상에 붙였다. 모래 위에 집을 수선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마치 아기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아가들이 우리말을 문법부터 배우던가. 문법 용어를 몰라도 우린 말을 잘 하지 않던가. 심지어 문법에 맞지 않게 말을 하든데도 의사소통엔 지장이 없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할 때 어떻게 조언할지를 생각해보면 좋은 방법은 명확해진다. 하루에 한글 단어 100개씩 암기하고 테스트를 하면 우리말을 빨리 배울까. ‘두음법칙’, ‘구개음화’, ‘자음동화’, ‘된소리’, ‘자음접변’과 같은 용어를 우선 설명하면서 문법책을 여러 번 돌리면 한국어를 잘할까. 그렇게 배우는 것이 쌓일수록 한국어 실력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질려버리게 될 것이다. 영어에 일찍부터 질려버린 아이들에게 역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우리말을 싫어하고 못하게 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왜 영어가 어려웠는지를 이해하기도 한다. 실용성을 빼고 가르치는 교사가 설명하는 방식으로 배우는 영어는 실용성이 없고 배우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독서로 통한 언어 공부는 깊고 빠르다


호주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부러워했던 것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마을마다 있는 드넓은 공원이 있다는 점이었다. 가족 단위로 공원에 나와 축구나 캐치볼을 하는 풍경이 흔했다. 잔디 위에 누워 한가하게 휴식하는 풍경을 보며 매일 종종거리며 살아야 제대로 사는 줄 알았던 ‘열심인’ 내 삶을 되돌아 보았다. 여유가 있는 삶을 알게 되었다. 우리 나라는 땅이 좁아 시드니처럼 넓은 공원을 많이 둘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자연과 만나는 이런 휴식 공간이 많아져야 청소년, 개인, 가족이 지친 마음을 쉴 수 있는 평안한 공간이 될 수 있을거라며 부러워했었다.


또 다른 한 가지 부러운 것은 행정 구역마다 운영중인 도서관이었다. 나 같은 외국인에게도 10권씩 대출을 해주었다. 지금은 우리 나라도 마을 도서관이 많이 늘어나고 잘 운영되고 있지만 그 당시엔 그렇지 못했었다. 테이프 음원이 있는 책을 빌려서 들으며 책을 읽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 진짜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어린이 코너에 자리를 잡았다. 그림 하나에 단어 하나가 쓰여진 아기 그림책부터 보기 시작했다. 그런 책은 하루에도 백권 이상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 친구와 대화한 날부터 매일 마을 도서관에 간 후 변화가 느껴졌다. 그동안 ‘의자’ 하면 거의 ‘chair‘만 떠오르더니, 이젠 용도와 모양에 따라 sofa, couch, stool, bench, wheelchair, armchair, rocking chair, swivel, high chair 등 다양한 의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채소나 과일, 물건도 뭉뚱그린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치환할 수 있었다. 일상의 회화는 전문 용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구체적인 모습을 쉬운 말에 담는 것이 다였다. 그 엑기스만 빼고 영어를 고생스럽게 배운 것이다.


도서관 어린이 코너에서 엄마들은 대화를 나누고 꼬마들은 바닥에 엎드려 재잘거렸다. 나는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고 속으로 따라해 보았다. 쉽고 간편한 표현들을 공책에 기록하며 입으로 말해보았다. 그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살아있는 표현의 재료였다. 뜻을 찾아볼 필요도 없는 쉬운 단어들로 일상은 표현되고 있었다. 이런 표현들을 내장하지 않고 어찌 유창한 영어가 가능하겠는가. 지금까지 눈뭉치를 만들지 않고 눈사람을 굴리려고 했던 것이다. 3개월 정도 눈뭉치만 만들어주면 저절로 굴러갔을 것을. 우리나라 영어 교육이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단어 테스트와 문법 중심의 철옹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3개월 정도 어린이 독서 빠져 살던 어느 날 학과장이었던 Gillian 교수님이 내게 물었다.


“보통 한국 학생들이 말하는 데 어려움을 겪잖아. 너는 말하기가 무척 빨리 발전하고 있어서 놀랐어. 비결이 있어?”


책읽기와 관련된 나의 일상을 있는대로 말씀드렸다. 어린이들이 하는 말을 따라하며, 어린이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고 답변했다.


“좋다. 그게 바로 언어를 배우는 최고의 방법이야. 처음에는 everyday English(playground English)를 먼저 익히고 그 다음에 독서로 수준을 올리는 것이 가장 좋은 외국어 공부법이지. 우리가 매일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최대한 1천 단어도 안되거든. 일상 대화에서 전문용어를 사용할 일도 거의 없잖아.”


엄지를 치켜 세우며 나의 발전에 칭찬을 해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 이거로구나!' 바보 도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 동화책과 소설책으로 원서 읽기가 이어지면서 1년 동안 익힌 영어가 지난 10년간 익힌 영어를 능가했다. 나는 이 즈음 결심을 하게 된다. '나중에 내 아이를 키우게 되면 반드시 기초회화를 듣고 말하게 한 뒤, 영어 원서로 독서에 빠지게 하리라.' 그 덕분에 두 딸은 영어를 '공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 알고 지내던 한국인 2세 친구가 한국에서 결혼했다. 그후 서울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는데, 어느 날 우리 나라 아이들이 무작정 단어를 암기하느라 애쓰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ㅇㅇ야, 네가 그 단어로 문장을 한 번 만들어 볼래? 그 단어를 넣어서 어떻게 말할거야?”

“아, 그런 거 못해요. 그냥 숙제니까 외우는 거예요...”

아이들은 깜짝 놀라며 문장 만드는 걸 부끄러워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는 거였다.


“나는 수업시간에 애들이랑 같이 책을 읽어. 재밌는 영상도 같이보고. 숙제로는 각자 수준에 맞는 영어책을 읽어오게 해. 주인공들이 나눈 말이 우리가 일상의 대화니까. 그러면 발음도 좋고 금세 네이티브처럼 말해.“


영어 원서나, 신문, 잡지를 읽으면 최신의 고급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회의 시에 영어 잡지나 신문에서 읽었던 내용을 아이디어로 내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영어로 최신 트렌드를 이미 보았기 때문이었다.


국어는 독서력이다. 영어도 누군가의 국어라서 독서면 충분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섭렵하던 큰 아이의 수준을 점검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수능 영어를 시험 삼아 두어번 풀어보게 했더니 거의 틀리지 않았다. 수능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앞으로도 꾸준히 재미를 좇아 읽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해력을 테스트 하는 수능 영어가 현재 아이가 읽고 있는 책의 수준보다 언어적으로 더 높지는 않구나 하는 증거를 얻은 것이다. 아이가 재밌게 생각하는 원서를 꾸준히 읽는 한 영어가 공부일 필요는 없다는 믿음은 이후 아이들 교육에 상당한 여유를 안겨주었다. 끝없이 공부로 접근해야 하는 한 과목을 국어처럼 놀이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 딸들은 학원도 안 댕기고 노는 것 같은데 어떻게 공부를 잘해요?”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마치 독서 전도사라도 된 것처럼 어린이 한 명 구하는 심정이 들었다. 마치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아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독서의 여지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조심스레 조언을 하곤 했다. 지난 15년간 교습소에서 아이들의 영어를 지도하면서 학교 영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어 공부에 조금이라도 독서를 끼워넣을 여지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미 독서와는 상관없는 공부법에 익숙한 아이들과 그 부모를 내 생각대로 독서로 이끄는 일은 간단하지는 않았다. 아이의 공부 틀이 학원 위주로 잡히기 전, 그러니까 초등 입학 전이거나 늦어도 초등학교 단계까지는 영어 원서를 끼워 넣을 여지가 있다.

이 책에서 두 딸과 내가 지도했던 아이들의 독서 경험담을 과목별로 입시와 매칭하면서 풀어 놓으려 한다. 종교관이나 정치관과 마찬가지로, 교육관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에 속하는지라 의견이 다른 누군가의 설득에 방향이 금세 바뀌지 않는다. 공부는 자발성이 있을 때 즐거움이 있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을 가진 나로서는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를 다그쳐서 분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아이가 마음 편하게 영어를 생각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자녀에게는 마음 편하게 독서의 재미를 일깨워줄 수 있었다. 재미가 있어야 공부가 자기 것이 되어 효율성이 조금이라도 늘 것이고, 그래야 어릴 때 조금이라도 더 놀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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