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해룡면 풍기리에 바람이 불면<1부>
2. 고갈비집 은옥씨
by injury time Dec 20. 2021
마을은 순천 끝자락, 여수와 맞닿아 있고 해안선이 육지 깊숙이 들어와 있어 뭐든 물에 빠져도 좀체 먼바다로 떠내려가지 않고 그곳 풍기리 앞바다에서 밀렸다가 나갔다가 하는 곳이다. 마을 남자들은 대부분 작은 어선으로 백조기를 잡아 팔고, 갯벌에서는 아지매들이 동죽이나 낙지 같은걸 잡아 새끼들 거둬 먹이기에 바쁜 형편이다.
상식네 가족은 순천 시내에서 살다가 5년 전 풍기리로 이사를 왔다. 순천 시내에서 새마을금고에 다니던 상식이 마흔이 되기도 전에 신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했고, 큰 병치레를 한 후 한가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자는 생각으로 풍기리 파란 기와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직장도 순천시에 다니던 걸, 읍내 해룡면에 있는 작은 분점으로 옮겼다.
“돼지감자 달인 물 챙겨가서 꼭 커피 마시지 말고 이거 마셔요.”
“아, 맛대가리 하나 없는 그런 건 뭐 하러 달여. 하루에 커피 한잔은 괜찮다니깐.”
상식은 아내가 건네주는 보온병의 돼지감자 달인 물을 툇마루 끝에 내려놓으며 넥타이를 고쳐 맨다.
“영순아, 아빠 멋지냐?”
상식은 딸 앞에서 가슴을 쫙 펴고 서서 거드름을 피우며 새로 산 콤피 재킷의 핏을 살핀다.
“아부지, 아부지가 이 동네에서 제일 멋있지라. 최고요. 최고!”
영순이는 아버지 팔에 매달려 코맹맹이 소리를 한다.
“아, 그래? 옛다. 용돈!”
상식은 딸내미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며 양철 대문을 나섰다. 뒤꽁무니에 풍선 몇 개는 달고 날아갈 듯하다.
영순 엄니는 부엌에서 그 꼴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 영순에게 어서 학교나 가라고 손짓을 한다. 방울이가 꼬랑지를 흔들며 영순을 뒤따라 갔다가 이내 마당으로 돌아와 툇마루 밑으로 들어갔다.
상식은 해룡면 새마을금고의 최고로 높은 자리인 분점장이자 과장이다. 사실 새마을금고에는 평사원 두 명과 과장인 상식, 이렇게 세 명밖에 없다. 평사원 두 명은 젊은 남녀로 눈치를 보니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 같다. 둘 다 못생겨서는 서로 튕기면서도 좋아 죽는다.
과장이자, 분점의 최고 총괄을 맡은 상식은 5년 만에 마을에서 돈 굴러가는 사정을 제일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읍내에서 자리를 잡았다. 백조기가 많이 잡히는 가을이 되면 은행에 돈이 몰리고, 봄이 되면 각 지방으로 이체되는 돈도 많아지고 대출도 늘어난다.
암 치료가 완치 판정을 받은 후로 상식은 건강에 다시 자신감이 생겼다. 무섭다는 3기 암을 이렇게 거뜬히 이겨낸 건 원래부터 건강 체질이라는 생각에 아내의 건강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가끔 담배도 태우고, 술은 남부럽지 않게 자시고 계신다.
최근에는 마을금고 건너편에 새로 생긴 고갈비집에 수시로 다니며 고갈비에 반주로 소주 일 병씩을 하고 퇴근을 한다. 고갈비집 여사장, 은옥씨가 딱 입안의 혀처럼 상식을 노긋노긋하게 해주는 통에 그 집에서 노닥거리며 한두 시간을 때우다 오면 양다리의 힘이 풀릴 정도로 마음이 부풀고 그런 날은 마누라도 예사로 보이지 않아 안아주고 싶어진다. 단, 눈은 꼭 감아야 한다. 아, 귀랑 코도 꼭 막아야 한다. 마누라랑은 영 심심한 관계다.
그날도 상식은 고갈비를 파먹으며 여사장, 은옥씨랑 눈웃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라, 상식이 형님, 여기 계신게라?”
고갈비집 딸랑이 달린 문이 열리면서 안순네 남편 철룡이 들어왔다.
“철룡아, 어쩐 일이냐?”
“아, 고등어 굽는 냄새가 읍내 끝까지 퍼져서 지도 모르게 들어왔지라. 잘 됐네요. 한잔 하고 싶었는데, 사장님, 여기 잔 하나 더 주십쇼.”
상식은 왠지 김이 샜지만 하는 수 없이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주며 얼마 전 뻘에서 나온 시신 이야기를 꺼냈다.
"형님, 고것이 말이요. 형사들이랑 경찰이 오고, 국과수가 와서 시신을 수습하고 지랄을 했는데 아직 신원파악이 안 됐다고 하드랑께."
"아니, 왜? 지문 같은 것도 있잖아?"
"앗따, 형님도. 뻘에서 굴렀는데 지문캥이는 불알 두 쪽까지도 다 불어터졌다니까."
듣고 있던 은옥씨가 킥킥거리며 웃는다.
"옷이랑 신발도 있었다문서?"
"그랑께요. 얼마나 급했는지 청바지가 돌돌 말려 혁대랑 그대로 채워진 채 밀물에 굴러왔다요. 청바지 안에 빤스까지 낀 채로요. 돌돌 말려서요."
"그러면 빤스까지 한꺼번에 돌돌 말아 벗었다는 말이네."
고갈비집 은옥씨가 소주와 빈대떡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슬며시 상식의 옆에 앉는다.
"떠밀려온 그 옷이 죽은 그 냥반 옷인지 뭔지는 몰라도 아무튼 경찰이 다 챙겨갔다고 합디다."
철룡은 은옥씨가 상식의 옆자리에 앉는 게 괜스레 신경 쓰이는지, 눈을 흘깃거리며 상식에게 소주를 따라준다.
"아니, 근데. 형님은 여기 자주 오나 봅니다? 혼자 여기서 고갈비를 뜯고 계시는 게."
"집에 일찍 들어가 봤자 뭐 할 일도 없고. 난 바닷가 체질이 아닌가 봐. 파도 소리 듣기도 싫어. 속 시끄럽고."
상식은 소주잔을 들어 철룡과 짠을 하며 은근슬쩍 은옥씨의 하늘하늘한 스커트 자락 위에 한 손을 올려놓는다. 철룡은 스커트 자락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상식의 손을 못마땅하게 째려보며 다시 죽은 작자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말이요. 그 죽은 놈이 손에 뭘 꼭 쥐고 있었더랑께."
"헐, 뭘 쥐고 있었대요? 그게 뭐예용?"
은옥씨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철룡에게 바짝 다가가 턱을 괴고 묻는다. 은옥씨는 이상한 게, 항상 입고 있는 블라우스 위로 젖꼭지 두 개가 건드리고 싶게도 뽈록 도드라져 있다. 상식과 철룡은 그걸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시선이 자꾸 거기로 간다. 철룡은 툭 튀어나온 두 눈에, 어릴 때 작신 얻어터졌는지 울퉁불퉁한 콧대의 볼품없는 주먹코를 하고 있다. 코만 봐서는 그의 물건도 대물로 보이긴 하다만은. 그건 안순네만 알 일이다. 게다가 툭 까진 입술은 두 눈 보다 더 튀어나온 것이 썰어놓으면 한 접시 될 듯한 주둥이를 갖고 있다. 기름진 빈대떡 반토막을 우적우적 입에 집어넣으며 기름 묻은 주둥이를 거친 손바닥으로 훑는다. 술기운인지, 은옥씨가 가까이 다가와서인지는 몰라도 철룡의 볼때기가 발그레하다. 가히 겨울에 먹으면 기똥차다는 물메기처럼 생겼다. 철룡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