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들어오기 전에 마을 이장이 경운기를 몰고 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갯벌은 온통 뻘밭이 아니다. 이차선 대로처럼 자갈이 바다 한가운데까지 깔려있다. 오고 가기 쉬우라고 오래전부터 마을에서 깔아놓은 것이다. 이 자갈밭은 물이 들어오면 사라졌다가 물이 빠지면 드러난다. 경운기는 물이 들어오기 전에 아낙들이 캐놓은 동죽을 싣고 나르는 일을 한다. 50킬로도 넘는 뻘 범벅인 동죽을 끌고 나올 수 없으니 채취가 끝날 즈음에 동죽을 실으러 오는 것이다. 이때 대부분은 경운기를 타고 아낙들도 함께 갯벌을 빠져나온다. 하지만 오늘 안순네는 좀 더 있다 간다며 캐놓은 동죽 꾸러미만 이장한테 넘기고 메주 띄운 간장항아리만 한 커다란 엉덩이로 철퍼덕 뻘밭에 앉아 갈퀴질을 했다.
그리고 해가 수평선 위에서 한 뼘 정도 위까지 내려올 때가 돼서야 안순네는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질통에 나머지 동죽을 싣고 뭍으로 나왔다. 오늘 동죽은 아낙들 중에 안순네가 최고로 많이 캤다. 뭍에 나와 가볍게 흙 묻은 몸을 헹구고, 수협 직판장으로 가서 동죽을 쏟아냈다. 오늘은 키로에 5000천 원을 받았다. 총 125,000원을 벌었다.
안순네는 동죽 판 돈을 전대에 꾹꾹 집어넣고 집으로 향했다. 눈밑으로 그새 기미가 바글바글해졌다. 눈먼 돈을 집에 오자마자 물로 깨끗이 헹구어 뜨신 방바닥에 고이고이 펼쳐놨다. 지폐는 총 삼십육만 삼천 원이었다. 안순네는 검붉은 잇몸을 드러내며 눈먼 돈을 오지게 쳐다보며 안절부절이다.
"뭔 돈이여?"
철룡이 기척도 없이 들어와 널려있는 지폐를 보며 놀라 자빠진다. 아니, 안순네가 더 놀라 자빠진다. 안순네는 눈을 부라리는 남편에게 하는 수 없이 이차저차 해서 눈먼 돈을 손에 쥐었다고 실토했다.
"아니, 이 여자야! 돈은 빼돌려도 지갑은 누구 건지 봐야 할 거 아녀!"
"아,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꺼기래요. 왠 첨 보는 젊은 총각이길래"
"아, 그럼 그거 죽은 그놈 걸 수도 있는데 그걸 깨대 버렸다고! 워디 다 버렸는디, 워디?"
안순네는 남편이 우악스럽게 쥐 잡듯 하자 눈물 콧물을 빼며 갯바위 틈이라고 얼버무렸다.
철룡은 며칠째 뱃일이 끝나면 갯바위 근처로 가서 서성인다. 오지랖 넓은 철룡은 신분확인이 안 된 시신이 순천의료원에 안치되어 있는 게 영 찝찝하고, 미스터리 한 청년의 사연을 본인이 제일 먼저 알아내고 싶어 안달이다. 그래서 철룡은 시간 날 때마다 갯가로 나가 어슬렁거리며 담배 두어 개피를 피며 시간을 보냈다. 석 달 동안 신원파악이 안 되면 신원미상 다른 시신들과 함께 몽땅 한꺼번에 화장된다.
해가 뉘엿뉘엿 지나 싶더니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촌이라는 게 다 그렇지만 인적이 드문 곳은 금세 칠흑처럼 어두워진다. 멀리 등대의 서치라이트가 바다를 향해 돌아가며 불을 비추긴 해도 등대 밑은 지독히도 어두웠다.
부둣가에는 배 네댓 척이 정박되어 있었다. 물이 빠졌다 들어와서 지금은 정박되어있는 배들이 조금씩 물위로 떠올라 천천히 흔들렸다. 계류 중인 배들 중에 제일 신형 1.5 톤 하얀 낚싯배가 계류줄을 바짝 당겨 묶었는지 갯벌위에 단단히 박혀 서있었다. 상식의 낚싯배다. 얼마 전에 상식은 소형선박 자격증을 따고 낚싯배를 구입했다. 노후에 유유자적 낚시나 즐기며 살 계획으로 구입한 소형 보트겸 낚싯배다.
철썩철썩. 그날은 바람이 유난히 불어와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섞여 조금 소란스러운 날이었다. 돌멩이를 발로 툭툭 차며 낚싯배 옆을 지나갈 때쯤 상식의 배안에 사람 형체가 비쳤다. 달빛이 선실을 연하게 비추고 있었다. 삼면이 곡선 유리창으로 되어있는 선실은 사람이 두세명 들어가면 꽉 찰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다. 그 선실 안에 상식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상식 앞에 그녀가 있었다. 은옥씨.
처음에 철룡은 그게 은옥씨인 줄도 몰랐다. 어느 여인이 가슴을 활짝 연채 고개를 뒤로 제치고 앉아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고 얇은 쇄골과 동그랗고 여린 어깨가 보였다. 넘치게 손안에 꽉 찬 젖가슴이 흔들리는 있었고 거기 앞에 웃통 벗은 상식이 파묻혀 있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터질듯이 뜨겁게 타올랐다. 달빛에 비친 그들을 침을 삼켜가며 선박 밑에 숨어 지켜보았다.
여인이 고개를 들었을 때 비로소 은옥씨인 걸 알았다. 평소 머리를 정수리까지 돌돌 말아 올렸던 은옥이 탐스런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이리저리 흔들었고, 머리를 흔들 때마다 탄력 있는 젖가슴도 같이 흔들렸다.
그리고 일어나 앉은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쇄골이 반듯하고 잘록한 허리에 유난히 가슴에서 배꼽까지 골이 깊은 그녀가 마주보고 서있는 상식의 잔근육 있는 어깨를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