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룡은 상식과 은옥씨의 연애를 보는 순간. 이 동네에서 그나마 인테리라는 형님이 마누라랑 딸내미까지 있는 형님이, 그토록 좋아했던 은옥씨랑 연애를 한다니 부화가 치밀었다.
철룡은 눈에 핏대를 세우고 선실 가까이 다가갔다. 눈물, 콧물이 어찌 그리 흘렀는지 철룡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문을 열고 냅다 욕지기를 하려고 했다. 철룡은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침이 질질 나오는 걸 손등으로 닦아가며 선실 문을 빠꼼히 열어 그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를 슬금슬금 빼냈다. 그리고 은옥씨의 부드러운 속옷에 코를 킁킁 박으며 흔들리는 고깃배의 계류선을 있는 힘껏 잡아 풀었다. 상식만 아는 팔자 옭매듭으로 빡빡하게 묶여있던 계류선이 서서히 풀리면서 배가 서서히 아주 조금씩 바다로 흘러나갔다. 그 사이 밀물이 제법 들어와 있었다. 은옥씨의 속옷을 움켜쥐며 철룡은 나머지 빼돌린 그들의 옷들을 배와 함께 바다로 흘려보냈다. 작은 선실 안, 은옥과 상식은 그것도 모른 채 열심히 몽크를 했고, 영화처럼 김서린 선실 창문에 탁! 손바닥 자국을 남겼다.
등대의 불빛이 바다 멀리 돌고 돌다가 철룡에게 눈부시게 쏟아졌다. 그리고 그때, 철룡은 발아래 진흙바닥에서 바닷물에 불어터진 반지갑을 찾아냈다. 안순네가 말한 반지갑임을 직감했다. 철룡은 은옥씨의 하얀 속옷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지갑을 주워들었다. 바닷물에 여러 날 잠겨있어서인지 카드는 지갑 속에 화석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너덜너덜 해져있었지만 지갑 속 신분증으로 봐서 주소지가 제주시인 남자의 것이었다. 철룡은 바다로 천천히 떠내려가는 상식의 배를 뒤로 하고 해변을 빠져나와 해룡면 파출소로 타박타박 향했다.
밤새 상식의 하얀 낚싯배는 먼 바다까지 나가지 못하고 엎어지면 코 닿을 듯, 풍기리 앞바다에서 보기 좋게 일렁이고 있었다. 어느새 물에 빠진 시신의 신원파악이 되었다는 소문이 벌써 풍기리에 파다하게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