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해룡면 풍기리에 바람이 불면<1부>
3. 봉알봉알 동죽캐기
by injury time Dec 23. 2021
"뭘 쥐고 있었냐면, 바로 이거여. 이거."
철룡은 카운터에 올려진 성냥통에서 성냥 한 개비를 꺼내 빨간 황을 댕강 부러뜨리고 나무 작대기만 손에 꽉 쥔다.
"뭐야? 성냥을 쥐고 있었다고?"
"그렇다니께라. 이 빨강 황이 없는 성냥"
철룡은 뭐 대단한 걸 발설하듯이 눈을 부라리며 쥐고 있던 성냥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는다.
마을 사람들은 알몸 남자 사체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았지만 뭔가가 계속 석연치가 않았다. 처음에는 여자랑 재미 좀 보려다가 물들어온지도 몰랐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상대 여자가 사라진 것도, 손에 쥔 성냥도 설명되지 않았다. 또 바닷가에서 불을 피우려고 했다는 것도 설명되지 않았다. 왜 옷을 벗었을까. 주민들은 손에 쥔 성냥 때문에 더욱 호기심 터지는 상황이었다. 뻘에서 죽은 사체의 신원파악은 안 됐지만 마을 사람들이 해변가에서 떠밀려온 운동화 짝이나 찌그러진 냄비 같은 물건들을 주워와서 그게 그 죽은 남자 거라고 추측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영순이도 동네 친구들이랑 수로 근처에서 배낭 하나를 주웠는데 거기에 라면봉지랑 빵 봉지. 수저세트. 생수병. 나침반. 노트 같은 게 들어 있었고, 속옷과 양말도 있었지만 그게 죽은 그의 것인지 어떤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마을 초입 쓰레기 더미에 쌓아놓았다.
대사리 물 때에 안순네는 새벽부터 동네 일꾼들과 갯벌로 나갔다. 대사리가 되면 물이 저 먼 끝까지 나가기 때문에 바닷가 사람들에게 그날은 대목이나 마찬가지다. 장화 바지에 꽃분홍색 그늘막 모자를 단단히 쓰고 눈만 빼고 얼굴 전체를 가려 해가 들어오지 못하게 채비를 하고 소쿠리와 갈퀴를 질질 끌며 갯벌에 들어섰다. 쪼그리고 앉아 갈퀴로 주변을 한 바퀴 빙 둘러 뻘을 긁어내면 동죽들이 물을 쭉 뿜으며 '저 여기 있어요' 한다. 알밤만 한 동죽을 봉알 봉알 손안에 가득 움켜쥐며 1분이 아까운 시간인지라 아낙들은 눈 돌아가게 동죽을 캔다. 안순네는 욕심껏 동죽을 챙기리라 생각하며 같이 들어온 일행들과 멀리 떨어져 구석탱이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한참 정신없이 동죽을 캐고 있을 때였다. 뻘 속에서 뭔가 넓적한 게 잡혔다. 작은 반지갑이었다. 안순네는 진흙이 잔뜩 묻은 그것을 뻘에서 나온 얕은 바닷물에 설설 헹군 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남자 가죽 지갑이었다. 열어보니 돈이 제법 들어있었다. 다 젖었지만 오만 원권 여러 개, 만 원권 대여섯 개, 천 원짜리도 세장 들어 있었다. 뻘이 묻어 서로 들러붙어 확실히 확인은 안 됐지만 눈먼 돈임은 확실했다. 안순네는 멀리 동죽 캐는 사람들을 살피며 지갑에서 현찰을 빼서 가슴팍에 숨기고는 필요 없는 빈 지갑은 멀리 뻘 밭으로 휘익~ 날려 버렸다. 지갑이 먼 해변가 바위틈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한편, 남편이 오지 않은 밤을 KBS 드라마로 때우고 있는데 마당에서 졸던 방울이가 컹컹거리며 두어 번 짖어대더니 끼잉끼잉 아양 떠는소리가 들렸다. 상식이 거나하게 취해 파란 지붕 집으로 돌아왔다.
"아효, 술 마시면 안 된대도 또 어디서 이렇게 마셨어라?."
영순엄니는 서둘러 발 디딤돌까지 내려와 남편을 부축하고 안채로 들어갔다. 상식에게 고소한 고갈비 냄새와 달큼한 소주 냄새가 났다.
"어서 씻읍시다"
영순엄니는 널브러져 있는 상식의 발에서 양말을 벗기고 벨트를 풀러 양복바지를 홱 뒤집어 벗겨버렸다. 하늘색 줄무늬 사각팬티가 사타구니까지 말아올라가 있었다. 새로 산 재킷은 바르게 옷장에 걸어두고 땀내 폴폴 나는 와이셔츠 단추를 벗기고 늘어진 메리야스를 벗겼다. 상식은 그때서야 정신이 드는지 남은 팬티까지 벗어 발꼬락으로 재주도 좋게 집더니 저 멀리 방 귀퉁이에 휙 날려버리고 안방 옆에 욕실로 비틀비틀 들어갔다. 뒤태를 보니 털이 숭숭 난 허벅지가 탄탄했다. 또 엉덩이 양쪽이 쏙 들어간 게 아직 쓸만하다.
언능 안방 형광등 불을 약하게 하나만 켰다. 은은한 불빛이 영순 엄니 얼굴을 발그레하게 비춰줬다. 보라색 슬립으로 갈아입은 그녀가 이부자리를 정돈하고는 영순이의 잠자리를 보러 옆방으로 고양이 새끼처럼 살금살금 들어갔다. 영순이 세상모르고 배꼽을 들어내 놓고 자는 것을 흐뭇하게 딸내미 가슴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남편이 씻는 소리가 가뭄 끝에 소나기처럼 기분 좋게 들렸다. 영순 엄니는 꿀물 한 잔을 진하게 타서 총총총 꼬리를 흔들며 안방 문을 잠갔다. 상식이 덜 자란 오이 꼬다리만 한 고추를 덜렁덜렁 흔들며 물기를 탈탈 털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파란 기와집의 밤은 노오란 달빛에 맛있게 익어갔다.
다음날, 상식은 전날 마신 소주 때문인지 설사병이 나서 새벽부터 화장실에 앉아있다. 그사이 영순이가 아침잠에 취해 따땃한 엄니 옆, 그러니까 상식의 이부자리로 파고들어 조용히 가서 누웠다. 영순 엄니는 모로 누워 선잠을 자고 있다가 옆에 누운 게 남편인 줄 알고 기분 좋게 손을 뻗어 슬그머니 옆에 누운 딸자식 아랫도리에 손을 넣어 더듬는다.
"엄니, 뭐해, 지금?"
영순이 깜짝 놀라 일어나고 영순엄니는 무안한 생각이 들어 정신이 어질어질하여 이부자리만 탈탈 턴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배고파 죽겠네. 빨리 맛나게 아침 해 먹자, 영순아."
그날은 유독 영순네 집 주방에서 맛있는 밥 냄새가 대문 밖 골목까지 고소하게 퍼져나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