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식 작가님이 자경의 외모를 궁금해하셔서 몇 자 붙임 합니다. 일종의 맞춤 서비스입니다.
자경을 설명하자면,
평상시에 전혀 꾸미지 않을 땐
넙데데한 평범한 얼굴에
곱슬기 있는 앞머리가 좀 귀엽게도 보이지만,
그게 또 조금만 꾸미면 화려해지는.
쉐도우로 얼굴 전체를 돌려깎기 하듯 터치하면 신기하게도 조막만 한 얼굴이 되고,
무쌍이지만 제법 또렷한 눈매.
반듯하고 훤한 이마에
웃을 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특징이 있음.
오똑한 코끝에 교태로운 점 하나가 콕 박혀있고,
손목 발목이 몸에 비에 생각보다 얇은 스타일로
촌에 살지만 고상하고,
나름 섹시한 면모를 보이는,
풍기리의 크고 살찐 전도연이라고 할 수 있음.
자경은 뭔지 모를 은옥의 부산함에 미간을 찡그리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팔꿈치를 자신의 무릎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이럴 때일수록 평정심을 유지하고 최대한 격식 있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간결하게 "네."라고 대꾸를 했다. 자경은 '네'라고 간결하게 말해놓고 순간 후회한다. 세상에나, 이은옥이라고 통성명이나 하자는 사람한테 너무 뜬금없이 ‘네’라니. 자경이 시인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내자,
"하하. 이분 이름은 박자경 님. 이 동네에서 제일 문학적 소양이 있으신 분이지 아마. 껄껄."
라며 자경을 근사하게 소개했다. 그때서야 자경은 오른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은옥이 보란 듯이 그나마 몸 중에 가장 얇은 팔목을 이용해 시인 쪽으로 턱을 괸다. 우아하게.
시인도 은옥의 볼우물에 눈가 주름으로 답례를 하듯 눈웃음을 지으며 괜한 소매를 걷어붙이고 허연 팔뚝을 내보인다. 둘이 격 없이 반말 비슷하게 섞어가며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경은 순간 자몽차에 입맛이 뚝 달아나서 찻잔을 쓱 멀리 밀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이만 가볼랍니다."
자경이 오천 원짜리 지폐를 내려놓고 슝 돌아섰다.
"어, 벌써 가셔요?"
송시인은 문 앞까지 나와 출입문을 잡아주며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민다. 자경은 그러든지 말든지 영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모든 혈관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예. 다음에 뵈어요."
자경은 카디건의 앞섶을 포개 가슴을 감싸는데 순간, 물컹한 가슴이 서로 뭉개진다. 그러고 보니 일부러 아래위 속옷에 신경 써 맞춰 입고 왔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다. 자경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바닷바람을 등지고 서둘러 언덕 위 파란 지붕 집을 향해 터덜터덜 오래된 낙엽과 함께 굴러가듯 다다랐다.
집 앞 골목 초입에 라이트 하나가 나간 낡은 회색 소나타가 다가선다. 남편 상식의 차다.
"책 보고 오는 거여?"
상식은 아내 옆으로 차를 대고 팔을 쭉 빼 보조석 문을 열어준다. 아내가 자주 북카페를 드나드는 걸 알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다. 그녀는 아직 풀이 죽은 얼굴로 남편 옆에 털썩 올라탔다.
"오른쪽 라이트 나갔서라."
그녀는 심장에 눈물 한 바가지가 고인 듯 쓸쓸하고 지친 목소리다.
"어라, 언제 나갔댜? 근데 오늘 카페에서 머선 일 있었어? 기분이 영 안 좋아 보이는구먼."
그녀는 남편의 말에 울컥 북받쳐 오는 서러움으로 운전하는 남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남편이 어리둥절해서 아내의 어깨를 몇 번 토닥이며 운전 좀 하자며 아내를 달랜다. 상식의 품에서 어디서 맡아본 냄새가 풍겼지만 그게 좀 전에 카페에서 만난 여자 스카프에서 났던 냄새였는지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날 밤 상식네 부부는 각자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며 잠이 들었다.
며칠 후, 주말이고 초저녁부터 마당에서 안순과 철룡까지 불러다가 한바탕 삼겹살을 구워 먹느라 야단이다. 설탕 넣어 휘휘 저은 막걸리로 기분을 내는 중에 영순 엄마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시큼 달달한 막걸리를 호로록 마시다 말고 그녀는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에요. 빼빼로 대신 안부 메시지 보냅니다. 주말 잘 보내시죠? 오늘도 행복하셔야 됩니다.ㅎㅎ
송시인의 문자메시지이다. 그녀는 순간 입가에 웃음이 쫘악 고이며 달뜬 표정으로 화장실로 달려가 답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영순 엄마는 간질이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남은 막걸리를 후루룩 마시고 엉덩이를 흔들며 안순네 부부를 배웅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하고, 웃음이 나는 입술을 깨물며 사과를 깎고, 딸의 이부자리를 정돈해 주며 슬쩍슬쩍 문자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남편 상식의 몸을 더듬으며... 그렇게 달콤한 주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내일은 꼭 <파우스트>에 가리라 마음먹으며 남편 상식의 품에서 웃으며 잠이 들었다. 베개 밑에 송시인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저장되어 있는 핸드폰을 꼭꼭 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