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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녀랑 썸 타는 사이라니. 3

그놈의 브런치, 돈 되는 것도 아닌데

by injury time

남편이 돌아오는 날이 점점 다가왔다. J는 한껏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J는 외로움이 뚝뚝 묻어나는 메세지로 이번이 거의 마지막다며 자주 연락을 해 왔다. 한 번쯤 만나도 좋을 거 같았는데 말할 수 없었다. 안 본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부끄러워 더욱 용기가 없었다. 아니, J와 사이버상의 대화가 더 익숙해져서인지 실제로 만나는 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매일 밤 J와 수많은 일기를 썼기에 실제로 만났을 땐 왠지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도 만나자는 말을 입밖에 꺼내지 못했다.


J와 나는 남편의 부재였던 3개월 동안 끊임없이 소통하고 위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미묘한 애정도 있었던 거 같다. 생전 하지 않았던 휴대폰 잠금을 실행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깊숙이 숨겨놓은 관계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J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지금처럼은 안 되겠어. 너랑 이 관계로 지낼 수 없어."


J는 내게 기어이 이별을 통보했다. 한번 얼굴 보고 만나지도 못하고 한번 손도 잡아보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J는 죄책감이 들었던 거 같다. 연인으로 소통한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단순히 몰래 밤새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했다. 어쩌면 더 나아갔다간 정말 남들이 말하는 불륜으로 갈 수도 있기에 여기서 관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J와 멋드러진 이별을 하고 이제 나는 갈 길을 잃었다.


남편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두 손에는 머물렀던 지역의 특산물 전복과 꽃게장을 한가득 안고 왔다. 나와 딸내미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게다가 남편은 3개월 파견 근무로 좋은 성과를 냈다며 제일 높은 성과금을 받아왔다. 그 성과금으로 남편은 그토록 바꾸고 싶어 했던 내 차를 바꾸자며 매일 자동차 팸플릿을 뒤졌다. 모든 게 완벽했다. 길을 잃어 J와 석 달간 공유했던 모든 것들과 마주하는 게 힘들었을 뿐, 내 삶은 모든 게 완벽했다. 나는 여전히 남편의 와이셔츠에 주름 하나 없이 다림질을 하고 딸아이의 사회숙제를 마치 내 숙제 인양 완벽하게 해내며, 집안의 소품들을 매일 마른 헝겊으로 닦아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결혼 생활 10년 만에 찾아온 새로운 남자, J가 정말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동지애였는지, 아니면 어떤 사기꾼이 순진한 아줌마를 석 달 동안 농락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중년이 된 J를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단지 나는 대학 때 모습 그대로인 나와 선배를 상상하며 석 달 동안 즐거웠던 것 같다. 나는 행복했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J와의 추억을 남편 몰래 브런치 서랍에 숨겨 놓는다.

오늘 밤, 브런치에서 마음에 쏙 드는 작가를 만났다. 그 작가의 글은 씹어먹고 눈에 넣고 가슴에 박을 만큼 마음에 쏙 드는 훌륭한 글들이었다. 가슴 벅차 같이 공유할 사람을 찾아 헤매는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남편이다.


"그놈의 브런치, 돈 되는 것도 아닌데 눈 나빠지게 맨날 들여다보고 있어!"


밤늦게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 남편은 변기솔을 들고 락스를 뿌려내며 잔소리가 한창이다. 현실 남편을 다시 사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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