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jury time Aug 31. 2023

결국, 어리기만 한 연인

#4

현민의 첫사랑은 초등 5학년때였다. 사실 첫사랑도 아니다. 현민이 같은 반 여학생이었는데 초등학생인데도 머리를 노랗게 염색을 하고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였다. 점잖은 아들에게 특별한 친구가 될 것 같은 생각에 자경은 자주 둘이 잘해보라는 농담을 하곤 했다. 처음 현민은 염두에 두지도 않은 노랑머리 여학생이 낯설었지만 엄마의 부축임에 결국 그 학생을 좋아하게 되어 한 달 만에 둘은 커플이 되었다. 여러 단톡에서 의외의 조합이라며 모두들 떠들썩했다. 그러던 중 현민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하루는 이불속에 숨어서 아들이 나오지 않자 자경이 이불을 들추며 물었다.

"아들, 왜 그래?"

"흐흐흑.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알아? 우주에서 가시밭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야. 흐흑"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내용인즉, 여학생들끼리 생일을 맞이하여 짝지어서 놀이공원을 가자는 내기를 했다는 거고, 짝이 필요한 노랑머리가 현민에게 고백을 하고 사귀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민은 계속 걔가 진짜 좋아한 게 아니었다며 밤새 이불속에서 흐느꼈다.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설명을 해도 현민은 엄마의 말을 믿지 못하고 노랑머리에게 이용당했다며 속상해했다. 자경은 남자들 찜 쪄먹을 년이라고 욕지기를 했고, 얼마 후 아들 현민은 다시 예전처럼 대면대면 지내게 되었다.


현민은 초등학교 때 겪은 일 때문인지 여자친구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여학생들의 의도 있는 관심에도 모르는 척했다. 무뚝뚝하게 중학생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고등학교에 올라간 현민은 한층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자랐다. 키도 187을 찍었고 방문 사이에 달아놓은 턱걸이 운동으로 어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단단해져 갔다.


"야, 얘, 있잖아. 지호. 얘가 이번주에 서울에서 보자는 데 너도 같이 가자."

현민의 친구, 민수가 얼마 전에 소개팅 앱에서 알게 된 여학생 지호 사진을 보여준다. 늘 성실하고 모범생일 줄만 알았던 민수는 어느 날 밤, 스카에서 밤새 공부를 하다 잠깐 심심해서 들어가 본 소개팅 앱에서 지호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민수는 지호와 한동안 챗을 하다가 드디어 서울에서 한번 보자는 약속을 한 것이다.

"왜 내가 거길 끼냐? 난 안가."

현민이 전자담배를 익숙하게 물고 말한다.

"야, 나 좀 뻘쭘하잖아. 같이 가자. 내가 비용 다 댈게."

둘은 새벽공기를 마시며 스카 앞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전자담배의 연기를 하얗게 내뿜었다.


명동역 5번 출구에서 셋은 처음 만났다. 주말이라 오가는 인파가 어찌나 많은지 현민과 민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는 드디어 만나기로 한 지호를 찾고 있었다. 보라색패딩에 토끼 머리띠를 하고 있을 거라는 지호를 그들은 멀리서 한방에 알아봤다.

서지호. 나이 17세. 1학년때 자퇴하고 지금은 애견미용을 배우러 다닌다는 지호는 혼자 포천에서 산다. 아빠와 새엄마와 함께 살다가 학원 근처인 포천에 원룸을 얻어주어 거기서 혼자 살고 있다. 한창 예민한 나이인 중학교 1학년때 지호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그 후 지호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상처를 많이 받았고, 결국 고등학교 1학년때 가출을 일삼다 자퇴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해리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한 달에 한 번씩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다고 했다. 동탄에서 온 어리석은 고딩 둘, 남학생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넋을 놓고 듣고 있다가 묘한 연민 같은 느낌이 들어 지호의 비틀어진 토끼 머리띠를 반듯하게 끼워주었다.   

"오늘은 오빠들을 만났더니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

지금도 아직 덜 큰 키에 젖살이 포동포동한 앳된 얼굴의 지호는 진한 아이라인과 틴트 발린 붉은 입술로 던힐 담배를 야무지게 빨았다.        


그들은 명동에서 줄 서 먹는다는 맛집을 찾아 한 시간 웨이팅을 한 후 드디어 붓가케를 먹었다. 오동통한 붓가케 면발이 젓가락 사이에서 미끌거리며 춤을 추는 걸 보면서 그들은 서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녀석들에게는 사람 많은 명동과 착착 진행되는 맛집 운영은 신세계였다. 자주 명동을 나온다는 지호는 거리를 잘 알아서인지 동탄 촌놈 두 놈을 데리고 다니며 노래방과 볼링장과 카페를 찾아다녔다. 그들이 본 지호는 같은 반 여자친구들과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해 보였다. 이미 담배 피우는 여학생들도 많았고 특히 화장은 중학교 때부터 하던 친구들이었기에 지호가 자퇴생이라고 해도, 해리성 장애가 있다고 해도 전혀 특별할 게 없었다. 더 멋있어 보였다. 지호는 아빠 카드로 녀석들에게 볼링비와 비싼 스무디를 사주었으니 서울에서의 만남은 녀석들에게 뜻밖의 경험이었다.    

결국 지호와 현민은 어리기만 한 연인이 되었다.


- 계속



    

이전 04화 고딩 용돈, 얼마를 줘야 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