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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Aug 30. 2023

고딩 용돈, 얼마를 줘야 할까

#3

1박 2일의 외출을 하고 돌아온 자경 부부는 아들의 쇄골에 새겨진 붉은 상처를 알아보지 못했다.

"너 거기 왜 빨개?
"어디 긁혔나 보다. 약 발라야 하지 않을까?"

현민은 대수롭지 않게 벌레에 물려서 긁었더니 이렇게 빨갛게 되었다고 얼버무렸다.

자경의 남편은 아들의 쇄골에 새겨진 빨간 상처가 키스마크라는 것을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자경은 딱 보고 그게 그거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게 정말 그거일 거라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들 현민에 대한 실망이 클 것이고, 그냥 지들끼리 장난친걸 거라는 순진한 마음도 있었다. 정말 일부러 그런 자국을 냈다면 그건 학대이고 범죄라는 생각에 자경은 한동안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안일한 태도였다.  


자경은 번번이 아들 현민의 일탈을 목도했으나 무기력하게 그 신호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가 그 모든 불길한 신호를 못 본 척,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어쩌면 양육에 실패한 엄마로 남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엄마를 배신할 아이가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믿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변명을 하자면, 아무리 부모가 타이르고 훈육한다고 해도 그게 간섭으로 느낄 나이이고, 결국에는 자기 할 탓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순간의 일탈이 있더라도 어쩌면 처음부터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가지 않을까. 태어나는 순간, 모든 게 결정되는 운명주의가 그녀의 양육태도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 같다. 그녀 역시도 모범생으로 살았지만 결국에는 너무나 평범하게 겨우 이 만큼, 이 정도밖에 살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형편없는 패배자의 기질이 발동했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부모라면 올바르게 이끌어주고 다듬어 주었어야 했는데 자경은 겨우 입히고 먹이고 우쭈쭈 하는 사랑 밖에 주지 못하는 가엾은 엄마였다.        


자경 부부는 독서실 생활로 식비가 많이 든다는 아들 현민의 요구에 용돈인상을 얼마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아들의 용돈은 고딩이 되어부터는 내내 십만 원이었다. 가끔 안 주고 넘어가는 날도 많았지만 아들은 그동안 용돈 쓸 일도 딱히 없을 정도로 개인 활동 없이 자경의 가정 안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 3까지 현민의 용돈은 오만 원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대중교통도 이용하고 친구들끼리 무한리필 삼겹살 집에도 다니면서 씀씀이가 커진 고딩 아들에게 파격적으로 십만 원의 용돈을 올려준 후 현민은 큰 불만 없이 용돈을 착실히 잘 쓰고 다녔었다.


근처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만나는지 현민은 주말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한껏 멋을 내고 나가곤 했다. 아들 현민을 보며 불안해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창 청춘인데 얼마나 놀고 싶을까, 아직 고3 초반이니 눈감아주자. 대리 만족을 하면서 자경 부부는 아들의 외출을 내심 응원까지 했었다.

"요즘 현민이한테 무슨 일 없니?"

현민이 연락이 안 되던 날,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린 자경은 민수에게 용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현민이 별 일은 없고요, 항상 용돈이 없어서 얻어먹어요."

또 다른 친구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돈 없는 거 말고 특별한 건 없는데요."

용돈이 부족해 친구들에게 얻어먹는다니, 자경은 아들 현민의 고단했을 고딩생활에 가슴이 아팠다. 친구들과 편의점에 가도 도시락이나 컵라면을 먹는 친구들사이에 현민은 마이쭈 같은 젤리나 하나 사서 먹는다니 순간 몹시도 죄책감이 들었다.

"넌 용돈을 어디다 다 쓰니?"

"주말에 시내 나가서 영화 보고 밥 먹고 하면 금방 쓰는 돈이에요. 민수는 일주일에 오만 원씩 양쪽 부모님한테 합쳐서 십만 원씩 받고, 또 따로 엄카가 있어요."

한 달에 40만 원이라니. 그건 좀 오버였다. 자경의 남편은 교통비와 식비, 여가비를 포함해서 아들의 용돈을 다시 책정했다.

"한꺼번에 용돈 다 쓰지 말고, 저축하며 계획적으로 쓰는 거 알지?"

자경의 남편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꼰대 같은 얘기를 하며 파격적으로 일주일에 오만 원씩 한 달에 이십만 원의 용돈을 주기로 선포했다.

현민은 좋아라 하며 미용실 볼.매 예약을 해달라고 한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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