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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Aug 25. 2023

자지마 독서실

#1

<자지마 독서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덕선이네들이 다니던 독서실 이름이다. 감독이 참 독서실 이름을 짓궂게 지었다고 생각하며 자경은 그 드라마를 보곤 했었다.  

어두침침한 조명, 칸막이 책상, 포스트잇, 마이마이 카세트, 이어폰, 무릎담요, 독서실 실장 아저씨, 셔틀버스.

자경에게 그 옛날 독서실이란 이런 단어들로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경은 공부했던 기억보다 밤 12시까지 독서실에 있다가 다 같이 낡은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갔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았다. 인기 많은 남학생과 눈인사를 할 수도 있고, 밀린 수다를 떨다가 집에 도착하면 자경은 그 거리가 그렇게나 짧을 수가 없었다. 그 시절 공부하면서 듣던 이승환, 푸른 하늘 노래들에서는 지금도 닳고 닳은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영어책 냄새가 새록새록 풍겼다.

   

"고3이 되었으니 스터디카페 다닐래요. 민수가 거기 다니는데 자기랑 같이 공부하재."

민수는 아들의 어릴 적 친구다. 착실하고 성실한 친구라 자경은 선뜻 등록을 허락했다. 독서실 생활도 학창 시절 한 번쯤 해봄직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더군다나 동네에 내놓라 하는 공부 잘하는 녀석들은 다 그곳 스카에서 공부를 한다니 아들도 꼭 그곳에 합류시키고 싶었다.

동지애로 똘똘 뭉친 전우애가 발동하는 독서실.

가끔씩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늦은 밤공기냄새를 맡기도 하고, 잠을 쫓는 달달한 믹스커피의 세계를 경험해 볼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이 자경에게는 있었나 보다. 자경과 아들은 그 길로 큰 여행용 가방에 온갖 짐을 싸  <달빛정원> 스카로 향했다.

      

동네에 대부분 스터디카페는 오픈된 넓은 공간에 파티션으로 칸을 나누고 있는, 커피를 마시는 카페에 가까운 곳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원하던 그곳. <달빛정원> 스카는 독립된 자기 방이 지정되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아들의 자랑이 이어졌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각종 음료와 커피가 구비되어 있고 간단한 음식 섭취가 가능한 공간이 나왔다. 쾌적한 환경에 자경은 집보다 낮다는 생각으로 지정된 아들의 자리를 확인했다.

남학생 방에 들어가자 20개 정도의 각각의 공간이 나온다. 아들의 공간은 서부영화에 나오는 술집처럼 방문이 아래위 50센티정도 뚫린 여닫이문으로 안 쪽은 딱 책상 하나, 의자 하나가 다였다.

자경은 관계자 외에 출입금지라는 안내게시판을 보고 서둘러 아들을 남겨둔 채 스카에서 빠져나왔다. 짐 정리하고 꽤나 오래 걸릴 줄 알았던 아들의 독서실 이사는 생각보다 짧았다. 마치 아들 군대 보내고 돌아온 엄마처럼 자경은 한동안 독서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아들도 드디어 수험생이니 스스로도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지에 불타 앙다문 입으로 카카오톡의 D-day 설정 기능을 켰다.


D-324   


자경의 아들은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니며 부지런히 스카를 오고 갔다.

"오늘 주말인데 스카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갈게요. 낮에 공부 못한 걸 만회하고 싶어요. 민수랑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아들의 첫 외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공부는 밤 10시 넘어야 잘되지 뭐.'

자경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짚으며 아들에게 낭만적인 응원을 했다. 순진하게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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