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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Aug 22. 2023

이제 와서 고3이 사춘기라니

프롤로그

2023년 올해 수능은 11월 16일이다. 매년 수능날만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며 여기저기 초긴장상태로 며칠을 보내곤 했지만, 우리 가족에게 수능은 멀고도 먼 남의 집 이야기였었다. 하지만 올 수능은 이제 아들이 주인공이다.

 

학기 초, 학교 입시 설명회에 다녀와서 다이어리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는,

그 후로 한 번도 그날을 염두해주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날은 진정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이제 한 두 달 남았다.

두 달 후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큰 파도를 맞이할 것이다.

이제 뭐, 무서울건 없다.

아주 그냥, 고3이 시작하자마자 찾아온 묵혀놨던 아들의 사춘기!

아들의 대환장 속 터지는 사건들을 겪고 나니, 이제는 입시 끝나고 찾아올 또 다른 시작이 뭐, 특별할 건 없지 않나 싶다.



아들은 정확히 만 17세. 2005년 어느 이른 겨울에 태어난 예민하고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었다. 외모뿐만 하니라 정서적으로 엄마인 나와 결을 같이 해서 늘 나는 아들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들도 나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며 공부 잘하는 모범생 아들로 지냈다. 남편 하고는 10분의 대화도 화를 부르곤 했지만, 아들은 늘 키타카가 너무 잘 돼서 엄마의 영원한 친구이자 애인이자 동반자였다.


중학교 엄마들 모임에선가 선배 엄마가 조언 같은 충고를 했던 때가 생각난다.

"얘들은 중학생 때 다 해봐야 돼. 연애건 사랑이건 뭐든. 남자 애들 한창 공부할 고딩 시기에 여자한테 빠지면 인생 끝나는 거지."

중학생 때 키가 180이 넘는 훈남이었으니 아들은 늘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허술했던 아들 폰을 가끔 열어보면 여학생들의 선톡이 많았고, 바나나우유를 주네 마네 끼 부리는 여학생과의 대화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말수 적은 아들은 짧고 간결하게 그년들(아이코, 오타가@@@ 그녀들)의 대시를 원천봉쇄했었다. 아들은 여자를 돌처럼 여기고 살았다. 혹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냐며 심각하게 묻기까지 했으니, 아들은 늘 동성 친구들과 알콩달콩 지낼 뿐이었다.


그렇게 귀여운 아들의 사춘기는 중 2쯤 찾아왔다. 진정 나는 그 시기가 사춘기인 줄 알았다. 나도 초보엄마였으니 아들의 사춘기니, 엄마의 갱년기니, 부부의 권태기니, 뭐가 뭔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든 게 알 수 없는 시기였다. 아들은 모범생, 엉뚱한 4차원 모범생으로 얌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했다. 아니, 맞이하는 줄 알았다.

 

"나 미국 보내줘"


로스앤젤레스에 배낭여행을 가겠다고 아들이 몇 달을 안달을 부렸다. 로스앤젤레스 거리의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본토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자유롭게 아이스크림을 한번 먹고 싶다는 아들. 혼자 고속버스 타고 인근 지역도 가보지 못한 녀석이, 그 큰 대륙을 배낭 메고 혼자 가겠다니. 그 후 아들은 제일 싸게 갈 수 있는 미국행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도시 대중교통 이용하는 방법들, 숙박할 곳들을 익히며 몇 달간 떼를 썼었다.

정말 이 시기가 우리 아들에게는 사춘기라고 생각했다. 참 귀엽고 참신한 사춘기를 겪는구나. 우리 가족은 아들의 취향을 적극 지지해 주며 주말이면 이태원까지 원정을 가서는 촌티 팍팍 내며 몬스터급 와퍼를 질질 흘리며 먹곤 했다.

아들은 책상 유리에 영문 세계지도를 끼워놓고 하루종일 세계 여러 나라들을 눈에 담으며 도시보다 더 도시 다운 곳으로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들을 미국에 보낼만한 형편도, 배짱도 없었다. 안 되면 엄마랑 같이 가자고 했으나 우물 안 개구리로 산지 수십 년인 엄마로서 패키지여행도 아니고 미성년 아들을 모시고 뚜벅이로 미국엘 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한마디로 어리기만 한 아들을, 눈 뜨고 코 베어 갈 것만 같은 미쿡에 보내는 건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이때 어떻게든 미국에 보냈어야 하는데...

아니다. 그랬으면 그때 아들은... 마약.. 대마초...노랑머리랑 동거.....

으악!!



그 흔한 사춘기 단골 대사 '어쩌라고'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방문 쾅! 닫고 들어가는 일이란 없이 늘 내 곁에서 그렇게 고양이같은 아들.

아들의 신박한 미국배낭여행의 꿈은 중3이 되어서 잠잠해졌고 사춘기도 조용히 끝이 나고 있었다

.

.

.

.

.

. 고 생각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아들의 고3 수험생 생활, 아니 고3 사춘기 생활을 비교적 냉정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써보려 한다. 초딩때 이미 사춘기를 치르고 이제는 의젓한 수험생 생활을 하는 자녀를 둔 축복받은 부모들이 많겠지만, 하마터면 고딩엄빠의 주인공이 될 뻔한 아들의 청춘을 담담히 정리하려 한다. 또한 그 시기 부모로서의 시행착오를 반성하며, 이글의 마지막은 제발 아들, 아니 우리 가족 모두의 해피앤딩으로 끝나길 바라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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