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좀 쓰는 여자

네, 제가 댓글 달아드립니다

by injury time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제일 먼저 깨달았을 때는 말할 때였다. 예전에는 강의도 하고, 또 학창 시절에는 중요 자리에서 리더십 있게 동기들을 이끌었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장도 맡았었는데 최근 5년 사이부터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못하겠다. 할 말은 산더미고 생각은 많은데 막상 멍석을 깔아주면 말이 꼬이고,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한 살 한 살 나이 먹으면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망신당한 경험이 있다고들 했는데 내가 완전 그 꼴이다.

나는 웬일인지 머릿속은 '아들 둘이요'로 생각하면서 입 밖으로는 '딸이요' 한 적도 있고, '금요일에 쉬어요'인데 '수요일에 쉬어요'하기도 하고, '49살이에요'를 '서른아홉 살이에요'한 적도 있다. 아직도'명륜진사갈비'란 단어를 못 외어서 '거기 있잖아 명진,, 어쩌고 고깃집'이럴 때도 있고, ITQ 자격증 시험공부를 두 달째 하고 있는데 아직도 'Iqp 어쩌고 있잖아, 나 요즘 그거 공부해'라고 한다. 연예인 이름은 최불암과 김혜자만 외우고 나머지는 항상, 뭐였더라, 누구였더라, '드라마 왜 있잖아, 이태원 어쩌고에서 머리 염색했던 여자애 남친으로 나온 그애' '아, 박서준?'응 그애,,,'

이쯤 되면 확실히 치매 전조증상이 맞는 거 같다 ㅠ


그나마 글로 쓰면 확실히 정리가 되고 웬일인지 머리가 반짝 반짝이고 평소에 쓰지도 않은 단어까지 소환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요즘 브런치 왕따 된 것 같은 기분이 한동안 들었다가 나만의 해결방안을 생각해냈다.

댓글 쓰기다.

브런치의 대부분 작가분들은

- 음, 쫌 쓰네

하고 하트만 누르고 떠나시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아마 글쓰는 사람들의 거리두기 성향때문이지 싶다. 나도 할 말은 많은데 그냥 냉소적으로 글만 읽고 멋지게 넘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시인분에게 혼자 주야장천 댓글을 달았는데 의외로 무척 고마워하셨다. 그 시인의 글은 내 댓글로 도배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이렇게 좋은 글에 한 마디 내발자취를 남겨야지 싶었다. 시인님도 고마워하고 나도 왠지 뿌듯했다. 그리고 외롭지 않아졌다.


예전에 읽은 글에 브런치는 외로운 곳이란 어느 인기작가님의 댓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분은 구독자가 수천 명이고 댓글 달리는 글도 많았지만 브런치가 외로운 곳이라고 했다. 뭔가 애잔했다. 댓글로도 구독자로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 초보고, 댓글달기에 적당한 수다쟁이다. 맨날 말할 때 어버버 했지만, 이젠 댓글로 말하면 된다. 사실 그동안은 할 말이 많았는데 멋진 척하느라고 그냥 넘어갔었다. 댓글을 달고 보니 새로운 세상이다. 서로 구독하는 사이면서 말 한마디 안 했던 분들과 인사를 나누니 즐거워졌다. 내가 제대로 읽고 있나 살짝 걱정도 되지만, 댓글을 쓰면서 나 역시 여러번 꼽씹으며 읽게 되니 많이 배우고 문장력도 좋아진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말들을 댓글로 옮기니 내 말들이 살아움직이며 춤을 춘다. 그냥 지나쳤으면 몰랐을 작가님들의 매력도 찾아냈다




현실에서는 오늘도 가족들이 먹다 남은 생선을 뼈채 들고 뼈에 붙은 살이나 알뜰하게 뜯어먹으며 사는 동네 촌부가 브런치에 입성해서 댓글 쓰며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나는 댓글 달기가 특기고, 글쓰기가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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