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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Sep 12. 2024

명품 사달라는 아이

  고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이 흔히 하는 고민 중 하나가 “아이의 씀씀이가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또래집단을 매우 의식합니다. 특히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에 비해 또래집단과 소비 수준을 맞추지 않으면 같은 무리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부모님께 명품을 사달라는 요구를 많이 합니다.   


  지금은 핸드폰을 걷어가는 학교들이 많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등교를 하면 핸드폰 수거함에 핸드폰을 제출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하루는 학급 친구 중 한 명이 제 핸드폰을 보고 “너 아직까지 그 폰 써? 너희 집 거지야?”라는 말을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지만 저희 반 아이들은 보통 한 학기에 한 번씩 핸드폰을 바꿨습니다. 교체 주기가 빠른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핸드폰을 바꾸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희 반 학생들의 경우 신발은 나이키를 신고, 가방은 키플링을 메고, 패딩은 노스페이스를 입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슬슬 노스페이스를 입기 시작하니 흔해진 건 안 입는다고 캐나다구스로 바꾸더군요.


  요즘 아이들은 화장품은 디올, 샤넬과 같은 명품 브랜드를 발라야 하고 스마트폰은 아이폰을 써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리해서 소비 수준을 맞춰도 소비 수준이 상향되면 따라갈 수 없습니다. 


  같은 반 학생 중에 아빠가 의사여서 조금만 힘들어도 학교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안 나오는 아이도 있고, 매주 레슨 받으러 ktx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부모님께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전국 규모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장학금을 타서 반에 간식으로 햄버거와 콜라를 돌렸는데 그런 건 안 먹는다고 하더군요. 


  디토소비(따라 산다는 뜻)라는 말이 있습니다. SNS의 발달로 우리는 남들이 뭘 사는지, 요즘 무엇이 유행하는 지를 너무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눈에 확 띄는 물건들(예를 들어 가방, 패딩 등)로 과시 소비를 했다면 요즘은 눈에 잘 안 띄고 자주 사용하는 소비재(예를 들어 틴트, 향수 등)를 통해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합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만일 내가 이걸 안 사주면 우리 아이가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이게 없어서 우리 아이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기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때문에 아이가 사달라는 비싼 물건을 사주게 됩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아이를 위한 길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비싼 물건을 사주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해야 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이 줄어든 만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입니다.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뭘 필요로 하는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저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만 찾습니다. 그러다 어쩌다 한번 부모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집 부모와 비교하면서 투덜거립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학원비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만 합니다. 그러다 아이가 학원을 결석한 날이면 “너 학원비가 얼마인 줄 알아? 너 학원 보내려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데…”라고 말하며 아이를 책망합니다.  

 돈을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노동의 가치를 안다면 돈을 쉽게 쓰기 힘듭니다. 아이에게 학원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면서 이 돈을 학원비로 쓰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물론 아이가 "돈! 돈!" 하게 되는 단점이 있지만 우리는 무한대의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회비용을 생각하며 움직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원하는 데로 무조건 사주거나, 돈이 없다는 말로 아이의 요구를 무시하기보다는 돈의 가치를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필요해서 사는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사니까 나도 따라 사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해야 합니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돈으로 얻은 만큼 돈이 없으면 그 관계는 사라져 버립니다.

 간혹 학교에서 비싼 선물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면서 친구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아이들을 봅니다.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내가 더 이상 친구 관계에 돈을 쓰지 않으면 나랑 놀지 않습니다.


  명품으로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의 낮은 자존감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돈 많고 대단한 사람들은 명품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실수로 롤스로이스 차에 흠집을 냈는데 차주분이 다행히 돈이 많은 분이었는지 사정을 들으시고 그냥 가라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아이들은 화장을 하면 예뻐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화장이 두꺼울 수록 나이 들어 보입니다.

  

  명품이 나의 가치를 올려줄 것 같고 명품을 가지고 있어야만 인싸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글쎄요 그렇게까지 인싸들과 어울려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학급 친구들과 어느 정도 급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했던 친구들은 지금 음악과 상관없는 일을 하거나 전공을 바꿨습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그 친구들도 그게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까를 생각하며 사는 삶은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명품이 나쁜 게 아니고 필요 없는데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명품을 사는 게 문제입니다. 

 저는 외면의 아름다움 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품을 휘감고 있는 사람보다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좋습니다. 명품을 몸에 두루기 보다 자체가 명품인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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