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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Sep 13. 2024

목표를 잃은 아이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꿈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레슨비, 전망 등의 이유로 진로를 국악 쪽으로 변경하자고 하시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엄마한테 반항 아닌 반항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집을 나왔는데 갈 곳이 없어 친구집에서 얹혀 지냈고 3일 만에 항복을 선언한 후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바이올린과 가장 유사한 국악기가 해금이라는 생각에 해금 레슨을 열심히 받았습니다. 하지만 해금을 배우고 있는 와중에도 바이올린을 놓지 못해 이 둘을 병행하니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때는 팔이 벌어진다고 혼나고, 해금 레슨을 받을 때는 팔이 붙는다고 혼났습니다.


  음악 교사로서 학부모님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음악, 미술을 전공하려고 하면 돈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어떻게 포기시켜요?”입니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목표를 잃고 다시 잡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엄마는 “어차피 음악 교사가 되는 게 목표이지 않냐”, “음악 교사가 되면 서양음악과 국악을 모두 가르쳐야 되는데 네가 서양음악을 전공하든 국악을 전공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엄마말 듣고 국악을 전공해서 임용고시 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냐”, “그렇게 바이올린을 하고 싶었으면 지금 하면 되지 왜 안 하냐?”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엄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제가 원하는 것을 했다면 조금 덜 후회가 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로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가 원하는 진로와 부모가 원하는 진로가 달라 고민하는 학생을 종종 봅니다.

 저는 몰입을 할 수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몰입을 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공부할 때는 시간이 안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놀 때는 시간이 빨리 가있어 놀랍니다. '벌써 갈 시간이야…'하면서 아쉬움도 남습니다. 시간은 항상 똑같이 흘러갑니다. 바뀐 건 내 마음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세상을 판단합니다. 부모가 보기에 자녀가 가고자 하는 길은 가시밭길이기에 편한 길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녀는 그게 고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사람은 노동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경험이라고 합니다.


  요즘 학생들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위 어른들이 이 직업을 가져야 돈을 많이 벌고, 잘 산다고 하니 너도 나도 그 직업을 가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으면 매우 불편한 것처럼 아무리 그 직업이 좋아도 나랑 맞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아이가 치열하게 고민해서 설정한 목표라면 부모는 최대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가 보기에 그 길은 무모하고 힘들어 보일 수 있겠지만 자녀가 그 길을 가고 싶다고 한다면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가 꿈인 학생이 있었습니다. 해외 원정훈련을 나가야 되는 종목이기에 돈이 많이 듭니다. 때마침 부상을 당해 부모는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고 합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 교실에 앉아 있지만 같이 운동하던 친구의 인스타를 보면서 부러움을 느낍니다. 나랑 같이 공부하던 친구는 올림픽에서 나가 메달을 따고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합니다. 오늘도 학교에 나가 교실에 앉아 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습니다. 다 외계어로 들릴 뿐입니다.


  사람은 목표가 있어야 달릴 수 있습니다. 그 목표는 다른 누가 아닌 내가 설정한 목표여야 합니다. 그래야 고난을 만나도 이겨낼 의욕이 생깁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녀의 꿈을 응원해 주기 힘들다면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자녀와 함께 현재 우리 집 경제 상황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셨으면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막노동이라도 힘들다고 느끼지 않지만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할 때는 그게 아무리 육체적으로 편한 일이라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온몸이 쑤시고 아픕니다.

 

  매년 평균 기대 수명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고 살기에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너무 많습니다. 유튜브와 SNS의 발달로 우리는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평균 이상으로 하면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유튜버 허팝은 장난에 진심인 사람입니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어 올립니다. 먹방 유튜버들은 먹는 것을 잘할 뿐인데 많은 돈을 법니다.   


  앞으로는 좋아하는 것을 오래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은 남이 보기에도 좋아 보이고, 내가 보기에 쉬워 보이는 것은 남이 보기에도 쉬워 보입니다. 그렇게 좋고 쉬워 보이는 것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분야는 포화상태가 되고 무한 경쟁에 빠지게 됩니다. 다행히 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꾸준히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성을 인정받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중간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힘들었다고 해서 내 아이도 힘들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내 아이는 나와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나와 다릅니다. 내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아이에게 강요하는 순간 꼰대가 되는 것입니다. 꼰대가 되면 아이는 부모와의 대화를 거부합니다.


  자녀의 꿈을 무조건 지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다 해봤는데…”하면서 자녀에게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하지 마세요. "나는 그랬지만 너는 아닐 수도 있어"라고 말하며 응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부모는 페이스 메이커이지 마라톤 선수가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제는 나입니다. 가정 형편이 안 돼서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 없으면 스스로 돈을 벌면서 공부하면 됩니다. 막지만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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