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보름정도 되자마자 첫째의 엠알아이촬영일이 다가왔다. 대학병원이라 예약대기 시간이 걸렸지만 시간은 금세 갔다.
전날 저녁부터 공복상태로 잠을 잘 재우지 않고 가는 것이 아기 엠알아이촬영의 요점이었다.
잠을 좀 덜 재우고 가야 촬영 중 깨어나 다시 찍어야 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기가 먹는 수면제다 보니 그 양이 적어 20분 정도의 촬영 중 깨어나는 아기도 종종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고 마음의 준비와 촬영준비를 하고 병원에 도착해서 주차한 뒤 첫째 둘째를 모두 유모차에 태우고 엠알아이실로 갔다. 슈크림빵이 별 탈 없이 엠알아이찍는는것에 모든 신경이 가있어서 1월의 추운 날씨도 배의 뻐근함도 잠시 느껴지지 않았다.
첫째 한 명만 데리고 다녔을 때는 몰랐지만 아이를 둘 데리고 다니니 어딜 가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다행히 둘째가 신생아라 잠을 잘 자 주는 편이었지만 한번 울기시작하면 잘 달래지지가 않아 첫째가 수면제를 먹고 잠들고 촬영이 끝나고 하는 걸 얌전히 계속 지켜볼 수 없게 되었다. 첫째는 잠들기까지가 힘들지 한번 깊이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스타일이라 주특기가 빛을 바랐다. 아기 엠알아이촬영의 정석대로 한 번에 잘 찍어주었고 마취도 돌아오는 차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엠알아이를 찍고 일주일 뒤 결과를 듣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형덕분에 큰 병원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의사 선생님의 입을 통해 그리고 검사 결과를 통해 로하의 소뇌가 일반아기들보다 너무 작다고 하시며 정상이길 바랐지만 안타깝다고 얘기하시는 말을 들으며 덤덤한 듯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멘탈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된 이상 염색체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시며 다시 일정을 잡아주신다 하셨고 그밖에 많은 설명을 해주셨지만 안 들 렸다. 첫째 같은 경우를 마라톤에 비교해 주시며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만 그나마 머릿속에 남았다.
가슴에 쿵하고 큰 돌하나가 얹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그동안 타 병원 선생님들을 만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어도 내심 일 퍼센트는 아니길 바랐고 그 일 퍼센트를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단팥빵도 나도 멍하니 진료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며 평소처럼 대화했다. 한 번씩 울어재끼는 둘째의 울음은 우리의 모든 걱정을 잠시 날려주었다.
울고 싶은 마음을 잊게 해주는 울음소리가 가족의 의미인 것 같았다.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큰 강을 건널 때 무거운 돌을 하나씩 짊어진다고 한다.
거친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짊어지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20대는 빚이 나에게 큰 돌이고 짐 같았다. 학자금 대출과 창업한답시고 도전했다가 얻은 빚 그리고 아빠가 유산으로 남기신 집담보대출금까지.. 그 당시에는 버거워서 꽤나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게으른 나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게 해 준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얹어진 돌이 나에게 주는 첫 원동력은 생각만 많이 하고 살던 나에게 글을 쓰게 해 주었다. 어쩌다 절망을 만났을 때 가슴에 쿵하고 돌이 얹어진다면 그 돌을 안고 강을 건너면 되는 것 같다. 잠시 건너다보면 큰 절망도 조금씩은 작아지듯이 어느새 절망의 강에서 서서히 나올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