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인문학:칸트가 현대에게 주려고 하는 메시지
∎칸트가 현대에게 주려고 하는 메시지 무엇 일까?
칸트의 사상을 이해하여 지혜를 담아내는 작업을 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를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준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칸트의 정언명법(定言命法)이 그것입니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자기도 피곤해서 자리 양보를 하는 것이 싫지만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라는 도덕 규칙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입니다.
이는 Kant의 정언명령 중에 하나로서 내면적 선의지를 중시한 의무론적 윤리설에 따른 행동입니다. Kant는 모든 인간이 목적의 주체로서 공존하는 사회 체제를 강조합니다.
정언명법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정언명법(자신의 행위의 준칙이 모든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이 돼라)은 남의 입장에 서서 행위하라(역지사지)는 것입니다. 정언명법은 공정성의 형식적 원리입니다.
두 번째 정언명법(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하라)은 사람을 물건처럼 대하지 말고 인간을 목적적 존재로 간주하라는 내용상의 원리입니다.
Kant의 정언명법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 법칙입니다. 즉 어떤 도덕도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어서는 안 되고 절대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준칙을 정했다면 ‘너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처럼 확대해 보아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됩니다.
그러나 “사기를 쳐서 돈을 번다”라는 준칙이 있다면, ‘나는 거짓말을 한다’,
그러므로 사기가 돈벌이가 된다. 그러나 ‘누구나 사기를 친다’, ‘누구도 거짓말을 한다’는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가언 명법(假言命法)은 올바른 윤리가 될 수 없다. “네가 이렇게 해주면 내가 널 더 좋아할게”는 올바른 것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민이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신의 연인인 정겸 이를 더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숭고하고 고귀한 사랑입니다.
둘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경험만으로 인식하는 것은 정당한가?
경험적인 것은 실증적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의 감각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실수투성이의 판단이 됩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과의 사랑을 살펴봅시다.
사랑은 지성(머리)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감성(가슴)이 없는 사랑은 허무합니다.
감성이 빠진 지성만으로의 사랑은 공허하고 지성이 없는 감성만의 사랑은 맹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무엇 인가를 판단해야 할 때(이별 등) 어느 한 면만으로 인식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