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STYLE ㅣ 김연정
즐거운 감정은 빨래가 마르듯 금방 날아가 버리고, 우울한 감성, 생각들은 언제나 침전하여 남아있음을 느낍니다. 우울함, 불안함, 슬픔, 좌절감에 예민하고 행복에 예민하지 못한 제 자신이 조금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만, 아직까지는 수면 위 햇살보다는 우울한 바다 쪽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어두운 것들이 가라앉아 있는 심해心海 속을 당분간 탐구하면서 글을 써 볼 예정입니다. 언젠가는, 나를 힘없게 만드는 것들에 대한 예민함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게로 자리를 옮겨가길 기대합니다.
늦잠을 잤다. 평일에 늦잠을 맘껏 잘 수 있다는 건 부러움을 살만한 일이건만, 일어나서 몇 시간이 지나도 몽롱한 기분은 여전하고 기운이 없다. 아침에 엄마가 해놓고 간 김치찌개를 끓이고 멸치, 시금치 등 반찬 몇 가지를 꺼내 대충 상을 차렸다. 회사를 다닐 때는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먹었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아침겸 점심, 그리고 저녁, 두 끼를 먹게 된다. 아마 당분간은 두 끼를 먹는 생활을 하게 될 것 같다.
친한 언니가 소개시켜준 회사는 놓치기 아까운 곳이었다. 거리가 멀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무료로 셔틀버스를 탈 수 있어서 다닐 만 했고, 일의 강도가 센 편도 아니었다. 그리고 정직원과 다르게 재택근무를 병행할 수 있어서 당분간 취업하지 않고 개인작업을 병행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딱이었다. 게다가 페이는 다른 곳에 비해 월등히 셌다. 야근, 주말출근을 하면서 힘들게 다녔던 예전 회사들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먼저 다니고 있었던 다른 친구와 언니도 어서 내가 오길 바랬고, 결국 넉넉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한 달을 다녔는데 어쩌다보니 오늘부터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상황이 변했다. 대신 재택으로 한 달에 몇 번 일을 하고 용돈 정도의 금액을 받게 됐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상황도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로또에 당첨된 줄 알았다가 아닌걸 알았을 때의 심정이랄까. 어제나 오늘이나 수중의 돈은 그대로지만, 어제까지는 부자였는데 자고 일어나니 가난해져버린 것만 같다. 사려고 했던 책장을 못 사게 됬고, 자세교정을 위한 필라테스를 등록하지 못하게 되어버렸고, 적금통장을 못만들게 되었을 뿐이다. 나보다 먼저 들어간 친구의 상황이 부럽고, 자꾸 뭘 흘리는 내게 짜증났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쏟은 컵에는 뜨거운 커피가 있었다. 이불에 몇 방울 튀지 않아 안심이라 생각하고 휴지에 물을 묻혀 대충 닦았다. 그리고 다시 컵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또 쏟아버렸다. 이번에도 다행인건 다 쏟은 게 아니라는거. 언제나 급한 마음이 문제다.
커피를 마시면서 취업포털 사이트를 켰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습관적으로 사이트에 접속한다. 직종을 선택하고, 상세검색에서 지역과 경력, 학력을 선택하고 검색을 눌렀다. 한 달 전에 잠시 일했던 곳에서 정직원을 구하는 공고가 떠 있었다. 호기심에 클릭해서 인담톡을 둘러보는데 결원에 의한 충원이란다. 아, 그때 새로 들어왔던 사람들 중에 결국 누가 버티질 못했구나. 이태원에서 살고 있다는 신입분이실까, 아니면 나보다 한 살 많았던 경력자분이실까. 괜히 동지애가 느껴진다. 올라온 공고는 다 비슷비슷했다. 어디서는 3년차 디자이너를 못 구해서 안달이라는데, 구직자 입장에서는 갈만한 곳이 없어 안달이다. 당장 취업할 것도 아니면서 회사를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퇴사하고 싶다. 평생직장은 무슨.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언젠가 그곳에서 벗어나 스스로 돈을 벌 궁리를 할 게 뻔하다. 차라리, 차라리 지금이 젊으니 고생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의도치 않게 처해진 상황에 대한 일종의 자기암시다.
몇 년간 기억에 남을만한 기쁜 일이 없었다는 것. 작년에 가장 잘 한 것이 고작 퇴사라는 것. 이 와중에 ‘고작’이라는 단어로 부정적인 기운을 내포하는 것. 안 좋은 일에 관한 거라면 줄줄이 말할 수 있다는 것. 그에 비해 기뻤던 일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것. 불과 얼마 전까지 올해는 행복했었다고 말한 것을 그사이에 까먹어 버린 것. 나름 겪은 세월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은 트라우마의 존재를 조금씩 느끼는 듯 하고, 나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불안과 트라우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좋은 일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일들을 지금처럼 나열하면서.
과거를 통해 자신을 성찰해보고 자기반성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나약해져있을 때는 다른 것 같다. 과거의 다른 선택지에 대해 가정해보는 것, 그리고 왜 그런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 분석해보는 것은 어쩌면 성찰이 아니라 그저 자학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그런 말들과 행동을 하며, 센스 있지 못하며, 실속이 없을까. 상황을 짚어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의 행동과 반응을 만들었을 성장기와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요인들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하다보면, 맞은편에서 밥을 먹고 있는 엄마가 자꾸 음식을 흘리는 것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 타고난 운명이 있는 거라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명확한 건 다 같이 늙어갈 거고, 결국 노환으로 혹은 사고로, 또는 병으로 어떻게든 죽게 될 거라고. 거리에서 반신불구로 동냥을 하며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저 노인은 이런 삶을 기대하며 살아오지 않았을 거고, 이혼을 생각하고 결혼을 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이해하지 못할 행동과 말들을 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그렇게 밖에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들을 키웠을 부모 혹은 그런 존재가 있고, 그들 부모의 부모가, 그들 부모의 부모의 부모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음식을 흘린다든지, 자고 있는 자세가 비슷할 것이다.
사랑도 타이밍이고 우연과 인연은 논쟁한다. 내 운명은 이미 날 때부터 정해졌을지도 몰라. 이것은 자학을 넘어서는 굴복이다. 어쭙잖게도 진정한 굴복은 아니며 변덕 가능성이 있는, 징징거리는 애같은 굴복이다.
곧 에버랜드에 갈거고, 서른 살을 맞이한 친구들에 대한 이벤트를 하다가 웃느라 배까지 아플 테고, 우리의 앞날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에는 맛있는 와인과 고기가 있을 테고, 심지어 실패담마저도 흑역사로 둔갑해 웃음을 뿌리겠지.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다는 걸 안다. 그저 지금 현재에 충실하자면 기운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기운 없고 꿀꿀하다. 나 꿀꿀하다고. 어차피 이런 외침도 하루뿐이니, 다 지나갈 이야기니 봐줘라, 봐주세요. 주변을 의식해서 듣기 싫은 소리는 참고 혼자 앓는 것. 그것도 가만 보면 못할 짓이다. 생각해보면 주변에 누구나 한명쯤 피곤할 정도의 기분파가 있지 않은가. 평소에 나처럼 묵묵했으면 이 정도는 애교다. 이건 일종의 자기암시다. 그러니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부정적 의지를 한껏 담아 ‘고작’ 꿀꿀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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