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앞서 <아톰>의 내용을 그들 식으로 해석한 1950년대의 일본 대중처럼, 1920년대의 서구 대중도 『로봇』을 엉뚱하게 해석하면서 열광했다.
서구의 대중은 1921년 초에 프라하 국립 극장에서 『로봇』이 초연된 이래 “로봇이라는 기계에 의해 유토피아가 실현된 미래”에 열광하면서 이와 관련된 토론회까지 열었다.
이 토론회에는 조지 버나드 쇼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같은 문학계의 독보적 인사들도 참석했다.
더군다나 최초의 진정한 컴퓨터인 에드삭(EDSAC) 등이 개발된 때(1949년)로부터 약 30년 전에 “백과사전을 읽어주면 그것을 고스란히 기억했다가 사람이 원할 때 되읊어주는 기억장치를 갖춘 로봇”이라는 개념은 차페크가 놀라운 수준의 기술적 안목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면 이런 걸 떠올려보라.
1980년대까지 만들어진 SF 작품들에서 인터넷과 비슷한 개념의 상용 서비스가 등장한 것을 보았는가? 집이나 사무실의 화상 전화로 도서관 사서나 공공 기관의 자료실 담당자에게 문의하는 것은 제외하고…….
『로봇』의 초연 후 5년 뒤인 1926년에는 독일 영화 감독 프리츠 랑이 자본가ㆍ정치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갈등과 화해를 주제로 한 영화 <메트로폴리스>를 발표했다.
<메트로폴리스>에서는 미치광이 과학자가 주인공 청년의 권력자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여성 마리아를 납치한다.
과학자는 노동자들에게는 전쟁과 증오를, 자본가ㆍ정치가 계급의 젊은이들에게는 타락할 것을 선동하는 여성형 로봇 마리아를 제작한다(데츠카 오사무가 만화로 리메이크했다).
노동자들에게는 평화를, 지배층-상류층에게는 자비와 화합을 호소하던 마리아는 박사에 의해 전쟁과 타락을 부추기는 '로봇 마리아'(거짓 마리아)로 대체되었다. 다행히 남주는 진짜 마리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믿고 있었기에 가짜 마리아에게 현혹되기는커녕 가짜 마리아의 실체를 폭로한다.
1942년에는 현대 로봇-SF물의 황제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가 단편 소설 『속임수(Runaround)』에 최초로 '로봇 공학의 3원칙(The Three Laws of Robotic, 이하 로봇 3원칙)'을 등장시켰다.
'로봇 3원칙'은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서 인간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1 원칙: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지시를 무시함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제2 원칙: 제1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제 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
제3 원칙: 로봇은 제1 원칙과 제2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