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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19. 2024

예양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당선작  <조선  활자공  임오관,  평화를  만들다>




오유키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임오관이 쇼군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관한 것과, 하야시가 임오관을 칭찬하거나 주의를 주는 것뿐이었다.


그렇듯 ‘지극히 평범한 대화’가 해질녘까지 오간 뒤 하야시가 일어났다.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나리. 오유키에게 저녁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자네 새 부인께 폐를 끼칠 순 없네. 떡 잘 먹었다고 부인께 전해주시게.”


어두워지는 거리로 나가는 하야시의 등짝을 바라보면서 임오관은 허리를 굽혀 절했다.

 시노부가 권해서 따르게 된 일본의 풍습이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내가 시나브로 일본인이 다 된 건가?’


일본의 풍습이 낯설지 않고, 조선말 어휘도 많이 잊어버렸다.

일본에 함께 끌려왔던 동료들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고향산천과 처자식들을 그리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어디론가 도망간 뒤 영영 ‘없어진’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몇몇은 이곳에서 알게 된 다이묘나 상인, 새로 얻은 가족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아주 먼 지역으로 떠났다.

 그들은 이따금 인편으로 소식을 전했는데, 감시를 감내해야 하는 탓에 조선말을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언문이 아니라 히라가나와 진서로 편지를 보냈다.


‘동료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내가 아는 조선말 어휘도 몇 개씩 잊었구나. 조선의 것이던 내 피와 살이 어느덧 일본의 것으로 거의 교체되었어.’


한숨을 길게 푹 내쉰 임오관이 자기 방으로 들어와 다락에서 보따리를 하나 꺼내더니 풀었다. 목활자를 깎는 데 쓰는 도구 일습이었다.


이 목활자는 주물사주조법으로 금속활자를 만들 때 어미자(母字)로 쓰인다. 하지만 화폐를 주조하거나 외국과의 무역에도 많이 쓰이는 구리의 가격이 오르고 있기에 일본 조정도 막부도 새 금속활자 제작을 주저하고 있다.

 더군다나 임오관이 만드는 목활자들은 이 일본 땅에서는 절대로 인쇄에 쓰일 일이 없을 활자들이기도 했다.


머리가 허연 임오관의 손들이 새 목활자를 깎으려다 멈췄다.


임오관은 이미 만들어둔 언문 목활자들을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발음을 해봤다.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임오관은 이 목활자들을 어린 자식들 쓰다듬듯이 조심스럽게 매만지면서, 그러다 몇 개씩 묶어 이런저런 어휘를 짜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문득 강항이 귀국하던 때가 생각나서였다. 그때 조용히 나눴던, 아니 쇼군의 밀정들이 이 집구석의 어딘가에 숨어서 들었을 대화를 임오관은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손을 써주겠네, 오관이. 나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가세.”


강항이 간곡하게 권했지만 이 당시에는 머리가 검었던 임오관은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서 요지부동이었다.


“아, 나리처럼 많이 배우신 양반님들이야 조선에서 나라님이 크게 써주시겠죠. 하지만 소인 같은 인쇄공은 조선 땅에 흔해 빠졌잖습니까. 그에 비해 여기 일본에서는 소인 같은 자가 귀해서 나름 대접이 좋습니다. 일전에 나리께서 해주신 명나라의 옛날 얘기가 생각나네요. 예양 선생이라는 분 말입니다.”


“예양… 말인가?”


‘예양’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강항은 임오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하지만 임오관의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경청했다. 예양을 언급한 이상 임오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항의 짐작은 아쉽게도 틀리지 않았었다.


“예, 예양 선생께서는 당신을 그저 졸개 따위로 보신 분들이 변을 당하실 때에는 그러려니 하셨죠. 하지만 당신을 부하로 여겨주신 분을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든 복수를 했잖습니까! 처자식을 버리고, 스스로 당신 몸까지 망가뜨리면서요! 제 마음 또한 예양 선생의 것과 같습니다.”


“그럼 이 나라의 천황과 대장군(쇼군)이 자네를 알아주니까 남겠단 건가?”


강항이 기가 막혀서 한 질문에 임오관이 더 기가 막힌 대답을 내놓았다.


“예, 처음엔 그분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겐 그분들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 제 마누라 시노부가 바로 그 이윱니다! 시노부가 크게 고마워하거든요. 제가 여기서 하는 일에요! 제가 하는 일 덕분에 일본이 평화로워질 거라고, 더 이상 자신처럼 전쟁 때매 서방 잃을 여자들이 없을 거라고 하면서요! 자기는 그렇게 믿는다면서요! 그래서 소인은 시노부를 떠날 수 없습니다요!”


강항은 기가 막혔다.


조선인 공장(工匠: 기술자)의 우두머리인 임오관이 일본 여인을 겁간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걸 예방하려고 후지와라 세이카의 건의에 따라 허드렛일을 하는 과부인 시노부와 맺어줬을 뿐이었다. 이전에도 이 스승과 제자가 이렇게 맺어준 조선인-일본인 부부는 아주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맺어준 여인이 지금 임오관의 발목을 아주 단단히 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군자의 도리는 부부 관계에서 시작되는 걸 잘 아는 강항이, 아랫사람한테 일본인 처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자네 처도 데리고 조선으로 가지 그러나.”


임오관은 강항의 이 권유에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지요!’라고 일갈하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름대로 정중히 대구했다.


“나리, 시노부도 소인만큼이나 늙었습니다. 소인이나 시노부 같은 무지렁이 천것들이 이 나이에 다른 나라의 말과 풍습을 처음부터 익히며 적응하는 건 너무나 어렵죠. 이는 소인이 겪어봐서 잘 압니다. 그나마 소인은 높으신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덕분에 비교적 잘 적응했고요. 그러니… 차라리 소인이 그냥 일본에서 사는 게 시노부에게도 나을 겁니다.”


강항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임오관, 자네의 뜻을 나도 존중하겠네. 자네를 억지로 데리고 간들, 마음은 여기 남아있다면 차라리 아니 데리고 간 것만 못할 테니까. 어쩌면 자네를 여기 끌고 왔던 놈들과 다를 게 없겠지. 물론 자네와 나눈 얘기는 조선에서 일체 언급하지 않겠네. 혹시라도 조선 땅에 남아있는 자네의 일가붙이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네.”


마지막 발언을 하면서 강항은 임오관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강항의 기대와 달리 임오관은 그냥 벌떡 일어나 절하며 정중히 사례했다.


“감사합니다, 나리.”


강항은 다시 주저앉은 임오관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러더니 자기 옆에 앉아있던 후지와라 세이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조정의 일을 해주면서 틈틈이 후지와라 군을 도와주게. 후지와라 군은 앞으로 일본에서 ‘성리학’이라는 묘목이 뿌리를 내려 거목으로 잘 성장하도록 가꾸고 돌봐줄 사람이야. 부디 잘 도와주시게.”


후지와라도 임오관을 향해 앉은 채로 허리까지 굽히며 임오관을 치하했다.


“임오관 공의 업적을 소생도 많이 들었습니다. 임오관 공께서 일본에 오시기 전에는 저희 일본인들은 책을 한 권씩 손으로 써서 만들어야 했죠. 목판 인쇄나 목제활자를 사용하는 법도 중원에서 망명 온 유량보(兪良甫) 공 등에게서 '사사(師事: 가르침)를 받아 사용해봤습니다. 허나 전자는 한 글자만 틀려도 목판 하나를 다 버려야 했고, 후자는 얼마 쓰지도 못하고 땔감이 되었습니다.”


후지와라는 착잡한 마음을 얼굴에 드러내고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예…, 막대한 재물을 투자한 데 비해 효과가 부족했던 겁니다. 사무라이들은 칼부림에만 신경을 쓰고, 쿠교우들은 인쇄업에 쓸 재물 같은 건 없다고 하거나 숫제 도락(道樂: 취미생활)에 빠진 채 학문에 무관심했죠. 상공인들이야 말해서 뭐하겠습니까. 다이묘들이 탐하던 조총이나 도자기, 혹은 쌀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농기구와 백성들이 찾는 생필품에만 신경 썼을 뿐이고요.”


후지와라는 축제가 한창이라 노래와 불빛이 가득한 교토 시내를 비탄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임오관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 주어 말을 이었다.



한글 붓글씨를 적은 17세기 하기야키 ‘추철회시문다완’. https://www.segye.com/newsView/2013123000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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