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웅진 Aug 19. 2024

 하야시 라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당선작  <조선  활자공  임오관,  평화를  만들다>


“헌데, 그 책에 들어간 그림도 금속활자로 만든 건 아니겠지?”


“예, 활자 만드는 데도 부족한 금속이니까요. 게다가 이건 언제든 또 찍을 수 있도록 글 부분까지 목판으로 만들었습니다. 팔만대장경처럼 말이죠. 각설하고요. 불경이나 성리학 경전처럼 귀한 서적에 글과 함께 들어가는 그림을 ‘변상도(變相圖)’라고 합니다. 헌데 처남은 이 변상도 제작법을 배웠더니 자기 공방을 따로 차리고서 엉뚱한 짓을….”


임오관이 말끝을 흐리자 쇼군께서 지그시 노려보셨다.

이에 임오관은 매 앞의 토끼처럼 몸을 움츠리며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게 말했다.


“저…, 남녀가 헐벗고 교접하는 그림들을 음란한 글과 함께 인쇄하여….”


임오관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쇼군께서 손바닥으로 자리를 두드리시며 크게 웃으셨다.


그러자 웃어야 할 때를 알리는 종이 울리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하타모토(旗本: 도쿠가와 막부의 상급 가신)들은 각자 자리에서 좌우로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다.


임오관 곁의 시녀도 소매로 입을 가리고 자지러지게 웃었다.


나 또한 웃기 위해 잠시 붓을 놓아야 했다.


한참 후에야 애써 웃음을 참으실 수 있었던 쇼군께서 임오관을 보셨다.


얼굴이 새빨개진 임오관은 그저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쇼군은 이런 임오관에게 씩 웃어주시며 말씀하셨다.


“하하하! 돈을 아주 많이 벌었겠구먼. 사내들이 줄을 서가며 샀을 테니까! 아마 음란한 계집들도 지나가는 사내에게 웃돈을 주고서 대신 사게 했겠지, 하하하!”


“아, 예…, 술값과 담뱃값, 그리고 약값 정도는 벌었죠.”


“약값? 누가, 도대체 어디가 아팠기에?”


쇼군의 하문에 임오관이 한숨을 팍 내쉬며 대답을 올렸다.


“속이… 썩었다더군요. 의원이 말하기를… 술과 담배를 하도 많이 해서… 폐와 간이 썩었다고 했죠.”


임오관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씁쓸해하는 표정을 지은 다음 말을 이었다.


“이렇듯 의원이 경고하는데도 처남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계속 술과 담배를 들더니만, 급기야 아파 죽겠다고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을 진정시킬 약을 찾았죠. 그러다 결국 죽었고요. 불행 중 다행히 처조카들에게 한 재산을 공방과 함께 물려주고서 죽었답니다. 그게 20여 년 전이었죠. 얼마 전엔 시노부도 죽었고요.”    



 

일본 풍속화인 우키요에를 찍어내던 목판화 인쇄소 https://amix-design.com/asoboad/blog-1234-39587.html






“욕봤네, 임오관.”


임오관을 이렇게 위로하는 이는 임오관이 에도 성에서 봤던 하타모토들을 비롯한 사무라이들이 입었던 하오리(羽織)와 코소데(小袖)를 입지 않았다. 조선이나 명나라의 성리학자들처럼 검은색 복건(幅巾)을 쓰고, 품이 넉넉하면서 수수한 장포(長袍)를 입었다.


이 사람이 후지와라 세이카의 제자이자 도쿠가와 가문에 속한 이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는 하야시 라잔이었다.


“소인이 벌인 일 탓인데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다 팔자려니 해야죠.”


임오관이 다 체념했다는 투로 말하자 하야시가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시게.”


하야시는 연녹색 물 같은 말차(抹茶)가 담긴 잔을 임오관 앞에 정중히 놓아주었다. 이 말차는 그가 가져온 가루녹차를 이 방의 한가운데 설치된 화로로 직접 끓인 물에 탄 것이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나리.”


임오관은 말차 잔을 들더니 고개를 돌리고서 한 모금 들이켰다.


역시나 쓰고 떫었다. 자연스럽게 달콤한 팥소를 넣은 흰 찹쌀떡으로 손이 갔다. 쇼군이 ‘하사한’ 시녀 오유키가 놓고 간 것이었다.


오유키는 지금 방문 밖에 얌전히 앉아 대기 중이다.


이 자리에 앉아서 차를 나누는 임오관과 하야시는 오유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쇼군이 임오관을 감시하려고 보낸 쿠노이치(くノ一: 여성 닌자)임을 말이다. 막부의 중진인 하야시의 친우(親友) 덕분에 입수한 정보였다.


그 친우는 이런 말도 해주었다.


쇼군은 여러 가신들 앞에서 임오관과 직접 대담함으로써 자신의 지적 소양을 과시하고, 자신이 ‘초대 쇼군(도쿠가와 이에야스)께서 애지중지하셨던 손자’라는 사실과 교토에 있는 조정을 얼마나 열심히 공경하는가를 드러냈으며, 마지막으로 도쿠가와 가문이 일본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떻게 얼마나 노력해왔는가를 홍보했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임오관은 쇼군의 그리고 도쿠가와 가문의 아주 좋은 도구였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런 정보는 임오관이나 하야시에겐 별 쓸모가 없었다. 오유키의 눈과 귀를 의식하면서 그저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오유키는 분명 손님인 하야시도 감시하고 있을 터였다. 하야시의 스승이자 일본 성리학계의 거두 후지와라 세이카가 그의 스승인 강항이 귀국할 때 했다던 발언 때문이었다. 쇼군이 임오관과 하타모토들 앞에서도 들려줬던 바로 그 발언 말이다.


쇼군 앞에서 임오관은 금시초문인 척했지만, 실은 임오관도 강항 곁에서 후지와라의 그 발언을 들었었다.


분명히 이를 짐작하고 있을 쇼군이 오유키에게 조용히 지시를 내렸으리라. 임오관을 찾아오는 자들이 누구인지, 무슨 말을 나누는지 잘 파악해두라고 말이다.


임오관은 속으로 냉소하면서 강항과 후지와라의 대화를 떠올렸다.     


“스승님, 일본 백성들은 노부나가 공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이 명나라와 함께 군대를 일으켜 일본 백성들을 위로하고 죄 진 자들을 토벌했으면 합니다. 일단 항복한 일본인들과 통역관들로 하여금 일본어로 방을 내걸게 하십시오. 원정 목적은 오직 일본 백성들을 재난에서 구하는 것이며,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은 무고한 일본 백성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알리십시오. 그러면 연합군은 시모쓰케노쿠니(下野国: 일본 동북방 지역)까지 진격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 말하고서 강항의 낯빛을 살핀 후지와라가 엄숙하게 말을 이었다.


“허나 일본군이 조선에서 했던 짓을 연합군이 이 일본 땅에서 그대로 저지른다면 쓰시마 섬조차 점령하지 못할 겁니다. 스승님, 공자께서도 춘추시대의 피바람을 멈추게 하여 중원 백성들을 구하시려고 중원 각지의 제왕들과 쿠교우들, 사무라이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치셨잖습니까!”     


후지와라 세이카가 강항에게 눈물을 흘리며 애절하게 말하던 이 발언을 임오관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려 40여 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벽에도 귀가 있다던가. 역시나 누군가가 근처에서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일본의 집은 벽이 얇아서 부부가 교접하는 소리까지 옆집 사람들에게 다 들린다는 지경이다. 그러니 후지와라의 이 주장을 ‘어쩌다 보니’ 들은 자가 분명히 다이칸(代官: 지방관)에게 고했을 것이다. 다이칸의 보고는 쇼군에게까지 닿았을 것이다. 쇼군은 임오관이 그런 사실을 눈치 챌 수 없도록 ‘강항 선생이 조선 조정에 제출한 글’ 운운했겠지만 말이다.


물론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후지와라 세이카를 얼마나 아꼈던가를 고려하면 이에야스가 그 보고를 곧이들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음험한 전국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한 이에야스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 후지와라에게 감시를 붙였으리라.

 저 이에야스의 손자도 이를 답습하여 후지와라의 제자들에게 감시를 붙였을 터….

 이를 잘 아는 하야시는 임오관과 대화하는 내내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루가 구리활자 https://bunka.nii.ac.jp/heritages/detail/198606


이전 13화 이시다 미츠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