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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18. 2024

후지와라 세이카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당선작  <조선  활자공  임오관,  평화를  만들다>


“아까 자네는 후지와라 세이카 선생이 시노부와의 사이에 오작교(烏鵲橋)를 놓아주셨다고 하였지. 그 일의 전말을 말해보게.”


쇼군께서 ‘오작교’를 언급하시자 임오관은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지 한참 대답이 없다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대답했다.


“아하, 견우와 직녀 사이에 다리를 놓아준 까치와 까마귀 같은 일을 후지와라 세이카 나리께서 하셨단 말이지요?”


“그래, 그래! 잘 아는구먼, 자네도, 하하하!”


쇼군께서 칭찬을 해주시자 임오관은 신이 나서 답을 올렸다.


“예, 후지와라 세이카 나리께서는 소인과 시노부가 단 둘이서, 그러니까 공방의 주방이나 우물가, 빨래터 같은 데서 ‘우연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셨거든요. 여러 번이나요. 그분의 스승이신 강항 나리도 함께하셨고요.”


“으음, 강항 선생이라면 게이초 5년(1600년)에 조선으로 귀국하실 때까지 성리학을 가르치신 분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쇼군. 제자이신 후지와라 나리는 그로부터 19년 뒤에 세상을 뜨실 때까지 소인들과 함께 일하시며 수많은 서적들을 간행하셨죠. 조선이나 명나라의 서책들은 물론이고, 당신께서 집필하신 것들도요. 그때 후지와라 나리께서는 공방에서 종종 벌어지던 조선인들과 일본인들 간의 갈등을 원만하게 풀어주셨습니다.”


“호오, 도대체 어쩌다 반목이 일어났는가?”


“조선인 공장(工匠: 기술자)들이 폐하와 쇼군의 총애를 받으니까 일본인 공장들이 질투가 난 게죠. 심지어 소인의 처남처럼 남만인(南蠻人: 서양인)에게서 기술을 배운 이들도 일본인 중에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배우고 익힌 걸 써먹어볼 기회가 주어지기는커녕,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 놈의 폭정 때문에 제 재주를 철저히 감추기까지 해야 하니 더 질투가 났던 모양입니다, 쇼군.”


“쯧쯧, 아리타(규슈 서부의 도자기 생산지)의 도공들은 조선인 도공들을 스승으로 모시며 열심히 배운다던데, 어찌 남만인들의 하찮은 재주 좀 어깨 너머로 익혔다는 이유로 그랬던 건지….”


“그렇습니다, 쇼군. 후지와라 세이카 나리도 아리타의 도공들을 예로 드시며 처남을 비롯한 일본인 공장들더러 저희 조선인 공장들로부터 열심히 배우라고 타이르셨죠. 여기에 시노부도 가세했고요.”


“아니, 자네 처는 고작 허드렛일이나 하는 여인이 아니었나?”


“아하, 쇼군! 류가 나이는 적어도 재주가 뛰어나 여러 일본인 공장들이 우두머리처럼 대했거든요. 바테렌 추방령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남만인 공장들이 함께 가자고 권했을 정도로요. 물론 처남은 재주 없는 일본인 신자들을 못 쓰게 된 물건처럼 대하는 기리시탄(キリシタン: 기독교인) 승려들에게 크게 실망해서 거절했다죠. 자기가 기리시탄들과 부대끼며 익힌 것도 고작 목수일 뿐이니 여기서도 그걸로 먹고 살만 하겠다 싶었고요. 게다가 처남은 시노부를 크게 걱정했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처남은 제 누이의 말을 잘 들었고요.”


“헌데 자네 처는 어쩌다 자네들과 남동생들 사이에서 중재에 나섰느냐고 물었네, 임오관!”


“아!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시노부가 어느 날 밤에 소인을 불러 그 이유를 이야기해줬죠. 그때 소인은 시노부가 갖고 온 탁주를 마시고, 된장을 발라 구워낸 두부 꼬치를 먹으며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처남도 있었고요. 행여나 소인이 시노부에게 몹쓸 짓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해서 함께 왔었죠.”


쇼군께 말씀 올리는 임오관의 표정을 보니 좋은 시절을 회상하는 듯했다.


“시노부는 소인더러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와 같은 박복한 여인이 더 이상 이 땅에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예, 정말 이렇게 말했죠. 처남은 제 누이가 한 그 말을 들으며 화가 났는지 술을 단숨에 들이키며 ‘제길!’ 하더군요.”


“자네 처남이 감히 누구에게 화를 냈단 말인가?”


쇼군이 역정을 내시는 듯하자 임오관이 넙죽 엎드리고 고개를 조아리며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아, 예, 쇼군. 처남은 높으신 분들께 화를 낸 것이 아니오라, 그저 제 누이의 팔자가 기구한 걸 떠올린 것이죠. 그러니까 제 누이를 지켜주기는커녕 그런 지경으로 몰아넣은 신불(神佛)들에게 화를 낸 겁니다! 소인을 만나기 전에 서방이 둘이나 전쟁에 나가서 죽었으니 말이죠.”


임오관은 또 다시 자신의 말실수 때문에 제 처남이 쇼군의 의심을 사게 되자 어쩔 줄 몰라 했다.


쇼군은 이번에도 임오관이 사시나무처럼 떠는 모습을 보시며 미소를 지어주시더니, 다른 주제로 넘어가셨다.


“그러고 보니 강항 선생이 귀국하시기 전에 후지와라 선생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쇼군께서는 하타모토(旗本: 도쿠가와 막부의 상급 가신)들을 둘러보시며 뜸을 들이신 뒤 무겁게 입을 여셨다.


“이건 조부께서 과인에게 들려주신 이야기야. 강항 선생이 귀국 후 조선 조정에 제출한 <간양록 >이라는 글에 적혀 있었다더군,”


쇼군께서는 이 말을 해도 될까 한참 고심하시더니 입을 여셨다.


“후지와라 선생은 일본 백성들이 하시바의 폭정으로 도탄과 나락에 빠져있다고 강항 선생께 소상히 말씀드렸다더군. 그러니까 명나라와 조선이 일본에 군대를 출병시켜 하시바를 끝장내달라고 하면서….”


하타모토들이 웅성거리며 임오관을 쳐다봤다.


임오관도 금시초문인지 두 눈을 소눈깔처럼 크게 뜨고서 끔벅이고 있었다.


쇼군은 좌중을 휘 둘러보심으로써 침묵시키신 다음 말씀을 담담하게 이으셨다.


“물론 하시바의 부하들이 조선에서 한 것과는 달리, 두 나라 군대가 일본에서 무도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일본인들은 그들을 크게 환영하리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고 조부께서는 말씀하셨네.”


쇼군의 이 말씀에 하타모토들이 일제히 동요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쇼군께서 두 손을 드시고 진정시키셨다.


하타모토들이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자 쇼군의 말씀이 이어졌다.


“일리는 있지. 우리 백성들은 조선 백성들과 달라서 새로운 승자에게는 군말 없이 복종하니까. 그자가 폭정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그렇다면 말입니다, 쇼군.”


사토 공이 조심스럽게 말씀을 올리려 하자 쇼군께서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쇼군, 조선 백성들이 지난 전쟁 때 하시바 측 점령지에서 봉기를 한 참된 이유는…, 소신이 생각하기엔 하시바의 부하들이 무도하게 굴어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조선 왕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어릴 때부터 받아서라기보다는… 말입니다.”


“자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전국시대에 이 땅에서도 다이묘가 타지를 점령할 때마다 점령지 백성들에게 무도하게 군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심지어 개중에는 그렇게 잡은 타지 백성들을 기리시탄 승려들에게 팔아넘긴 자들도 허다했다고 한다. 조선 속담 중에 집안에서 새는 통은 집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지. 딱 그런 꼴이야!”


하타모토들 자리 곳곳에서 ‘끄응…’ 같은 신음소리가 났다.

 아마 그들의 집안 어른들 중에도 타 다이묘의 백성이었던 자들을 ‘포로’랍시고 기리시탄 승려들에게 넘기고서 화약이나 조총, 재물을 입수한 자들이 있었던 듯하다.


“허나 조선의 농민들은 순순히 복종하는 대신 자기 마을을 다스리는 사무라이를 따라 봉기했다. 그 사무라이들은 조선 왕을 향한 충성심을 꺾지 않았다. 심지어 동래성을 지키던 ‘송상현’이라는 관헌은 휘하에 부하가 한줌뿐인데도 ‘조선 왕이 지시하지 않았으니 항복하기가 어렵다!’고 유키나가 공에게 큰소리를 치고서 용맹하게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고 한다. 그러니 앞서 말했듯 조부도, 후지와라 선생도 크게 감탄하셔서 강항 선생께 성리학을 가르쳐달라 하신 것이다. 그런데…,”


쇼군께서는 숨을 고르시면서 좌중을 둘러보신 다음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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