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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빛소금 May 08. 2019

혼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두  번째 이야기

톰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


톰 할아버지


 우리가 가려고 했던 알베르게 문 앞에 독특한 옷차림의 할아버지께서 서서 포즈를 취하고 계셨다. 신기한 마음에 허락받고 사진도 찍고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할아버지께서의 본인의 성함을 '토마스' 또는 ''이라고 부르라 말씀해주셨다.


보고싶은 톰 할아버지


 다음 날 아침 UU와 함께 길을 나서는데 우연히 할아버지를 만나 자연스럽게 함께 걷게 됐다.


YU and Tom



UU와 나는 둘 다 길치여서 길을 잘 몰랐는데 톰 할아버지와 동행하게 돼서 길 잃을 걱정 없이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었다.


톰 할아버지의 나침반


 톰 할아버지는 이번 순례길이 무려 7번째라고 하셨다. 몸에 새긴 순례자라는 의미의 조개도 보여주셨다.


이 사진 역시 뽀또 뽀도하며 가서 서보라며 찍어주신 사진



"뽀또 뽀또"하며 사진을 찍어야 하는 구간마다 알려주며 순례길에 관한 역사나 세부적인 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셔서 덕분에 걷는 길이 배로 즐거웠다.



보고싶은 톰 할아버지2


보통 순례길을 잘 걷기 위해선 신발을 미리 내 발에 길들여야 한다고 하는데, 그 사실을 순례길에서 알게 된됐다. 새 신발을 신고 걸었고, 금방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말았다.

결국 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다음에 또 물집이 잡히면 약국 가서 구매하라며 사진을 찍으라고 해준 토마스 할아버지
Photo by 정환
Photo by 정환


 할아버지께서는 본인의 일처럼 걱정하시며 꼼삐드를 직접 붙여주셨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할 사랑이었다. 그는 날개 없는 천사임이 분명하다.     


*꼼삐드(Compeed) : 물집에 붙이는 패드




나와 함께 걸어줘서 고마워요

나무가 함께 있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길을 나섰다. 화장실이 몹시 가고 싶었다. 보통은 그런 찰나에 *바가 나오기 마련인데 이 날따라 바는 고사하고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서 건물 앞마당을 쓸고 계신 할아버지께 사정을 말씀드리니 흔쾌히 화장실을 내어주셨다. 다시 한번 Muchas gracias(정말 감사합니다). 살면서 가장 오래 소변을 참은 날이 이날이었던 것 같다.


와인 약수터

 걷다가 소문으로 전해 들었던 와인 약수터를 마주했다. 말 그대로 물 약수터에서는 물이 나오는 것처럼 와인 약수터에서는 물 대신 와인이 콸콸콸 쏟아져 나왔다. 나와 UU는 작정하고 자리를 깔고 앉아 와인을 물처럼 마셨다. 취기가 올라 자연스럽게 속 깊은 인생 이야길 나누었다. 아마 순례길에 와서 처음으로 취한 날이지 싶다.



'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에게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속 얘기를 쉽게 할 수 있어진다. 보통 때는 다음 알베르게까지 오후 2~3시 정도면 도착하지만 이날은 밤 10시가 다 돼서 도착했다. 술에 취한 나를 이끌고 먼 길을 함께 해준 UU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알베르게 사장이 뭐라고 뭐라고 했지만 참깨라면은 꿀맛이었고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바 bar:빵이나 음료를 파는 카페


조나단&데이비드 부자와 함께라면


 30여 일의 순례길을 걸으며 몇몇 친구들과 자주 함께 걸었는데 그중에는 데이비드&조나단 부자가 있다. 이 부자와 운행 스케줄이 비슷해서 우연히 마주친 적이 많았다. 하루는 조나단이 직접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라며 본인의 MP3를 내 손에 쥐어주면서 노래도 부르라고 말해주었다.


조나단과 나


우리는 The Beatles의 Hey Jude라는 노래를 신나게 다 같이 합창하며 걸었다. 조나단의 섬세한 배려 덕분에 30km도 거뜬히 잘 걸을 수 있어서 고마운 날이었다. 날씨도 10점 만점에 100점이었고 음악도 10점 만점에 1000점이어서 행복해서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내내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다.


이 길을 또 걷고 싶다

 그로부터 몇 밤이 지난 어느 날. 평소엔 새벽 5~6시에 운행을 시작하지만, 성당 관람을 하고 오후가 다 돼서 길을 나섰다. 신기하게도 때 마침 그 시간에 우연히 조나단을 만났다. 전날 *부르고스가 축제를 해서 조나단이 술을 많이 마셔 늦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조나단 나 유


 중간에 배가 고파 빵에 참치를 발라서 먹기도 하고 셋이서 재밌게 수다를 떨면서 먼저 출발한 데이비드 할아버지가 계신 마을까지 우리는 무사히 함께 걸었다. 두 부자가 상봉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본 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길 위에서 만나요


 식당에 계신 노부부가 말을 걸어왔다. 내 핸드폰 기종이 뭐냐고 신기하다 운을 띄우시곤 순례길을 걷고 있는지 물으셨다. 본인들도 걷고 싶은데 나이 때문에 망설여지신다고 했다. '아니다, 충분히 걸으실 수 있다.'라고 구글 번역기를 통해 말씀드리고 후에 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을 따로 하지 않아도 조나단과 만나 같이 걸었던 것처럼 노부부와도 그러길 바라본다.     


*부르고스 -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 기착지 가운데 가장 큰 도시이다     


CJ is Handsome man!


CJ


 CJ와 자주 함께 했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우연히 만났다. 그와 나의 걸음걸이가 비슷해 자주 마주친 것. 그는 대만 사람이고, 금융권에서 근무하는데 쉼 없이 일만 하다 번 아웃 증후군이 걸려 사수에게 이야기해 장기 휴가를 내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어느 날 그의 휴대전화에 핫스팟을 연결했다. 휴대전화 이름이 CJ is handsome man이었다. 그래서 장난으로 크게 웃으며 "CJ is handsome man"이라고 외쳤더니, 그가 화답으로 "SoYoung is pretty girl."이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우연히 만난 CJ


 그와 같이 걷는 동안 참 즐거웠다. 그 덕분에 큰 힘이 났다. 그 역시도 나와 걸어서 좋았다고 했다. 마지막 날 헤어질 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가슴 저릿한 느낌이랄까? 슬프고 아쉽다는 것으로는 절대 표현이 안 된다. 대만과 한국은 가까우니 꼭 다시 만날 거라 믿는다. '그때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한층 더 깊이 있는 대화도 나누어야지.' 생각해본다.


보고싶은 CJ


혼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나무는 혼자 있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에 혼자 걸으러 왔는데 왜 자꾸만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지?‘

자주 함께 걷던 친구 모두에게 대대적으로 혼자 걷겠다고 선언했다. 막상 혼자 걷게 되니 거대한 구렁텅이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어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보다 1시간 더 늦게 출발한 UU가 앞에 누가 힘없이 걷기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나였다고 보자마자 꽉 안아주었다. UU 덕분에 살았다. 나는 나를 잘 몰랐던 거다. 혼자 걸어보니 혼자 걷는 것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의기소침해진 일이 생겼을 때

외에도 어떠한 감정의 변화를 느꼈을 때

그 감정 또는 기분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하다

아직, 혼자는 외롭다

2017.07.26 정소영     


순례길에서 주로 무얼 하는지

걷는다. 생각한다. 혼잣말한다. 사진을 찍는다. 새소리를 듣는다.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비가 오면 우의를 꺼내 입는다. 더우면 가는 길에 웃옷을 벗는다. 길에서 마주하는 순례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햇빛이 강하면 안경에서 선글라스로 바꿔 착용한다. 노래를 듣고 부른다.(한 구절 이상 기억하는 노래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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