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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Oct 20. 2024

단체로 벌을 주는 것보다는

걷기, 듣기, 쓰기

수업태도가 좋지 않을 때, 1인 1 역할을 하지 않는 친구가 많을 때, 싸움이 벌어졌을 때 우리 반은 단체 경고를 받는다. 어느덧 경고가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누적이 되면 성찰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이 바로 그날. 

목요일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기에 금요일에 우리 반은 성찰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성찰 '자신이 한 일을 깊이 되돌아보는 일'로 마음을 반성하고 살피는 시간이다.


1교시를 끝내고 성찰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어떻게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반성문을 쓰게 할까? 반성문을 쓰고 가정으로 보내 확인을 받아오는 방법은 아이의 학교 생활을 부모에게 알리는 효과가 있다. 교육적 지도는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평소의 아이의 학교 생활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의 반성문 전달은 득 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 따끔한 훈계로 행동이 즉각 수정이 될 수는 있겠지만 아이가 진심으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될지는 의문이다. 반성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의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된 뒤에 함께 지도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사용해야 된다.


벌을 줄까?  간혹 자신이 잘못을 했으니 마땅히 벌을 받겠다는 아이가 있다. 스스로 벌을 받겠다는 모습은 표면적으로 책임감 있게 보이지만 일시적이 벌을 통해 마음의 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핑계가 될 수 있다. 또 그러한 아이는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도 마땅히 벌을 요구한다. 마음의 반성이 아니라 몸의 힘듦으로 잘못을 전가하게 될 수도 있다. 벌을 받았으니까 괜찮다거나 혹은 벌을 받지 않기 위해 행동을 요구하는 것 역시 도덕적 수준의 어린 단계이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깊이 생각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할까?

이는 아이들을 향한 내 교육적 목표이기도 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것.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지 말자는 것.


성찰의 시간이 그러한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모두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학교 숲을 걷겠습니다.. 한 바퀴, 두 바퀴, 절대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어요.

걸으면서 생각하세요. 내가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


두 줄로 서서 우리는 천천히 학교 숲을 걸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작은 학교지만 나무 사이를 걷고, 운동장 모래를 으며, 체육 하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 걸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아이들이 자신을 생각하기를 바랐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걷겠습니다.. 선생님이 앞에서 손을 잡아줄 거예요.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걸어요."


한 바퀴는 남자아이들이.

또 한 바퀴는 여자아이들이

앞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팔의 느낌을 의지한 채 걸었다.


"눈을 뜨고 싶은 마음을 누르세요.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세요. 천천히 끊어지지 않게. 뒷사람을 배려하려면 아주 천천히 걸어야 합니다."


당황한 아이들의 표정, 이건 무슨 놀이인가 재미있어하는 아이들의 얼굴

진지하게 눈을 꼭 감고 뜨고 싶은 욕구를 참아보려는 진지함.

우리는 천천히 한발 한 발을 걸어 한 바퀴를 걸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빨리 걸을 수 없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걸었다.

그렇게 걷는 시간을 통해 마음을 차분히 했다.


"자, 이제 벤치에 앉아보세요. 이번에는 눈을 감고 듣겠습니다.

가만히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바람이 느껴지는지, 어떤 향기가 나는지 잠잠히 눈을 감고 느껴보세요."


처음 2분은 오로지 자연을 느끼는 시간

두 번째 2분은 감사하는 시간

세 번째 2분은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감사하는 시간을 통해 자연에게, 부모님께, 또 나에게, 내 주변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마음으로 고백하라고 했고 기도하는 시간은 종교가 있는 아이들은 신에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라고 했다.


두 눈을 꼭 감은채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두 손을 모은 아이도 있었고, 고개를 푹 숙인 아이들도 있었다.

나 또한 아이들과 마주하며 잠시 기도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들이 되게 해 주세요.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걷는 시간과 듣는 시간을 끝낸 뒤 우리는 교실로 돌아와 쓰는 시간을 가졌다.


"성찰을 해보고 난 뒤의 본인의 마음을 적으세요."


"성찰의 시간이 참 좋았다. 처음 해보는 시간이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반은 성찰의 시간이 있다. 우리 반만 있는 시간이라 좋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더 잘해야지."

"성찰의 시간이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도덕 시간에 성찰의 중요성을 배워서였는지

반성의 시간이 아닌 성찰의 시간 동안 아무도 괴로워하지 않고 두 시간을 보냈다.

그저 걷고, 걷고, 눈을 감고 들어보는 시간이 얼마나 아이들의 마음에 와닿을까 고민했지만

아이들의 글을 보니 참 다행이다 싶었다.

올바른 소리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결국 아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결정과 다짐일 테니.

착실하게 규칙을 잘 지킨 아이들도, 꾸러기짓을 많이 해서 늘 주목받는 아이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이었으니 다행이었다.


꼭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는 어른이 되어가길

우리 반 모두가 그런 용기 있는 어른이 되길.

나도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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