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다름 아닌 소설의 이 첫 문장입니다.
희망이 없는 시절에 그래도 상관없이 내 길을 나아간다는 굳은 의지를 잘 표현한 구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파친코>는 드라마로도 방영되며 이슈가 되었고 한동안 떠들썩했지만, 그 당시엔 선뜻 손이 안 가서 망설이다가, 얼마 전에야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책을 읽은 것은 오랜만이었던지라, 즐겁고 설레는 맘으로 읽을 수 있었는데요. 여느 책을 읽을 때 내게 와닿는 문장을 찾으려 애썼던 것과 달리, <파친코>는 그냥 그 시기의 인물들의 상황에 감정이입하여 함께 마음 아파하고, 행복해하고, 또 더러 분노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시기야 나름의 어려움은 늘 있기 마련이기에-지금도 마찬가지이고-, 그 시기에도 힘듦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시기에도 세상은 참 불공평했던지라, 누군가는 편안하게 살아내고, 또 누군가는 힘겹게 모든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죠. 소설의 주인공 '선자'의 삶이 그랬습니다.
삶의 궤적으로만 보자면, 참으로 박복한 그녀의 인생이었습니다.
유부남과의 사랑으로 어린 나이에 싱글맘
결혼한 후 겪은 타지에서의 생활고
남편의 옥중 고초와 죽음
아들과의 갈등 및 그의 죽음
며느리의 죽음 등
여러 고단한 상황에서도 '선자'는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냈습니다. 좌절하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하고, 신념에 반하는 어떤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고 본인만의 주체적인 인생을 살려 노력하는 그녀의 삶의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연 내가 같은 자리에 있었다면 그녀만큼 열심히 살 수 있었을까, 좌절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파친코>를 읽으며 척박한 그 시기를 떠올리자니 문득, 희망을 노래했던 작가로 대변되는 빅터 플랭클이 떠올랐습니다. 빅터 플랭클은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절망적인 환경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급속도로 삶의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는 그곳에서, 그가 포기하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낼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빅터 플랭클은 버텨낼 수 있던 이유로, 책의 집필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꼽습니다. 의미 치료에 대해 연구했던 그는 수용소에서 그 이론들을 실제로 확인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수용소 생활에서 틈틈이 사람들을 관찰하며 원고를 쓰기도 했죠. 일종의 본인의 깨달음을 나누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에서였습니다. 만약 그렇게 책을 쓰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언젠가 나가서 이러한 깨달음을 나눌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지옥과도 같은 수용소에서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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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니체는 말했습니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이전에 어디에선가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스스로 가치 부여를 해본다면 삶이 조금 더 소중해지고, 살아야 할 이유 역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의 이 구절을 조금 바꾸어 우리 인생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때로 삶이 나를 저버리지만, 그래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