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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희 Mar 13. 2024

원고 쓰며 겪는 감정 변화 4단계

#20. 이 허탈함은 뭐지?



 저번 포스팅에서 원고 후반부 작업인 편집 단계에 대해 포스팅했습니다(이전화 '원고만 넘기면 끝인 건가요?', '원고가 책이 되어가는 과정' 참조). 대망의 편집까지 끝내고 나면, 원고 집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지요. 지금 시점에서 그 기간을 돌이켜보면, '쓰는 행위' 자체는 루틴한 일이었지만, 내면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던 시기였습니다. 초보 작가로서 출간용 원고를 작업하다 보면 변화무쌍한 감정선을 타게 되지요. 매 순간 수십 번씩 널뛰는 마음이 주체되지 않기도 하고, 처음 마주하는 감정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처음'이 그렇듯, 이 또한 서툴고 낯설기에 일어나는 감정이며, 지금의 시기를 잘 보내고 나면 그만큼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원고를 쓰며 경험한 감정 변화는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단계, 막막함과 부담감

 출판사와 출간 계약하면 처음에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기분 좋은 마음도 잠시, 덜컥 겁이 납니다. 이제는 물릴 수 없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밀려오지요. 자신감이 하락하며 두려움과 막막함이 들기도 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마치 외딴섬에 홀로 떨어진 심정이지요. 초보 작가의 경우에는 이 마음이 좀 더 큰 것 같습니다. 이유는 전체 출간 프로세스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니 체감이 안 되는 거지요.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때의 느낌이랄까요.

 저는 그 당시 막막함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돌파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일단 궁금한 점은 출판사에 충분히 물었습니다. 가끔은 이런 것까지 물어도 괜찮을지 고민되기도 했지만, 양해를 구하고 질문을 드렸지요. 그리고 서점으로 가서 닥치는 대로 에세이를 읽기도 했고요. 지금까지 책을 적지 않게 읽어온 편이었지만, 확실히 내가 '독자 입장'인 것과, '원고를 써야 하는 입장'이 되어 책을 읽는 것은 달랐습니다. 다른 저자들이 어떻게 원고를 구성했는지 관점에서 책을 보면, 확실히 작업에 도움이 됩니다.


2단계, 고독감과 외로움

 막막함과 막연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다음으로 밀려오는 감정은 고독감입니다. 여타 프로젝트의 경우 합동 작업이 가능하지만, 글쓰기는 다릅니다. 온전히 혼자서 기획하고 실행해야 하며, 중간중간 어려움이 닥쳐도(아이디어 측면에서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 결국엔 홀로 감내해야 하지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고독한 싸움입니다. 때로는 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안쓰럽다고 할 뿐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마치 어두움이 짙게 깔린 사막에서, 나침반 들고 홀로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달까요. '이게 맞는 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수없이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킨 일이면 원망이라도 할 텐데, 내가 좋다고 시작한 일이다 보니 탓할 대상도, 의지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몸서릴 정도의 고독감이 사무치게 싫다가, 어느 순간은 인정해버린 것 같습니다. 글 쓰는 일이라는 것이 본래 고독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고독의 심연 끝에 다다라야 내면의 무언가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이렇게 인정해버리고 난 뒤에는, 고독이라는 감정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3단계, 자신감과 의구심의 무한 반복

 고독감이 사라진 이후에는 실제 써야 할 원고 분량에 대한 현실감이 느껴지며 조급해집니다. 마음을 잡고 원고를 써나가다 보면 중간중간 부담감과 의구심을 마주하게 되죠. 온라인상 글과 다르게 출간된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갑니다. 출간용 글쓰기는 '활자화'되어 전국에 깔린다는 부담감이 얹어지기 때문이죠. 원래 브런치에서는 별생각 없이 술술 써 내려갔던 글도, 출간되어 나온다고 생각하면 토씨 하나에도 예민해지게 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써야 좋은 글이 나오는데, 부담감을 잔뜩 안고 글을 쓰니 정체되는 순간이 옵니다. 좋은 말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겉멋이 들고, 무언가 교훈을 첨가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글을 쓰게 되기도 하고요. 이 부담감과 의구심은 원고를 쓰는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어느 순간에는 괜찮아져서 글을 썼다가, 또다시 회의감이 들면서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이 문장을 정녕 내가 쓴 것인가, 생각할 만큼 뿌듯하다가도 다시 들여다보면 형편없는 것만 같아 작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원고를 쓰며 겪는 수많은 슬럼프들이 이 단계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퇴고하는 순간까지도 부담감과 의구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죠.


4단계, 허무함과 허탈함 

 지난한 단계를 무수히 견뎌내고 나면 어느새 원고가 완성됩니다. 아, 완성이라기보다 마감기한이 도래했으니 어쩔 수 없이 떼어낸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그렇게 기진맥진한 상태로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나면, 뿌듯함과 성취감에 앞서 정체 모를 허무함이 밀려듭니다. 분명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데, 이 허탈함은 뭐지, 한참 동안 이유를 몰라 당황스러웠습니다. 모든 게 소진된 느낌과 더불어 한동안 몰입했던 대상이 사라지니 허무하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꽤 오랜 기간 가열차게 향하던 에너지의 방향이 순식간에 길을 잃은 느낌이랄까요. 마치 이별 직후의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누군가를 원 없이 사랑한 후에 헤어지면, 마음 한 켠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갑자기 남아버린 물리적인 시간과 더불어 내면까지 비어버린 '공(空)'의 상태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죠. 헛헛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듯한 외로움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원고를 넘기고 한동안은 이런 상태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분명 원고만 끝내면 후련할 것 같았는데, 헛헛한 마음이 들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죠. 원고 쓰는 기간에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단절한 생활을 했기에, '이것만 끝나면 수능 끝난 수험생처럼 모든 걸 만끽하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원고 작업이 끝나자 갈피를 못 잡는 마음이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원고를 작업하며 느끼는 마음은 작가마다 다를 겁니다. 어쩌면 제가 겪었던 감정을 다른 작가님들은 겪지 않을 수도 있고요. 전혀 의외의 마음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건, 분명 처음 원고 작업을 하게 되면 미처 예상치 못했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때 당황하지 마시고, '이 또한 언젠가 흘러가버릴 감정이다', 생각하며 유연하게 잘 버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첫 작업하면서 갈피를 못 잡는 마음에 혼란스러운 작가님이 계시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로가 되셨으면 좋겠고, 앞으로 첫 출간을 앞둔 예비 저자라면 '이런 감정이 들 수도 있겠구나'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셔서, 앞으로 마주할 상황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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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 원고를 넘기고 나면 출판사에서는, 편집 단계와 맞물려 발 빠르게 출간을 위한 작업에 착수합니다. 표지 디자인, 제목 선정 등의 굵직한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지요. 이 단계에서 저자 역할은 사실상 크지 않지만, 중간중간 출판사와 의견을 주고받거나, 협의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책 제목'에 관한 이야기가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


 그럼,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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