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맘을 붙잡고 싶을 때가 있죠.

기분 안 좋은 날, 그 마음이 썩 나쁘지 않아서 해결하지 않고 둬봅니다.

by 박재

홀 Hall



문질르고 세척하는 쾌락을 아는가

탈의나 환복으로 해결되지 않는 출입의 멍에를 아는가

깨끗해지거나 가벼워지고 싶은 게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아 내려야 할지 모를 때
나는 눈앞에 있는 것부터 끌고 간다


떼를 불리고 밀어내고 헹구고 쥐어짜는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가끔 내가 내 마음을 어디에 숨겨뒀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흘러가는 물 속 그 떼국물 속엔 단순한 찌든 때만 있지 않았다
붙잡지 못한 감정들 눈치 보며 삼켰던 말들
제때 비우지 못한 생각의 잔해들이 함께 씻겨 나간다


작은 원을 둥글게 말아 돌고 나면
가운데로 쏙쏙 사라지는 구멍이 있다
나는 그걸 오래 보았다


빨려 들어가는 물의 표정이나 속도를 헤아리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 구멍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상상했다


나도 한 번쯤 손을 배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위를 쳐다보며 내려갔다가 오고 싶었다


비워버리는 쪽이 아니라 말없이 사라지는 쪽
구멍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구멍에 절반쯤 걸치고

검은색에 숨어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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