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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May 23. 2023

워킹맘을 포기하기 시작하던 날

나의 팬데믹 시대

 9to6에서 10to7으로 바뀌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창립 이래 9to6를 고집해 왔고 아무리 자율출근이니 직원복지니 해도 클라이언트의 스케줄이 중요한 산업인 이상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외부에서 영입한 한 이사님께서 끊임없이 10시 출근을 제안하신 결과 희망자에 한해 10to7으로 근무시간이 변경되었다. 물론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직원 만족도는 한층 높아졌다.


 오히려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9시까지 출근을 하려면 아이들 등원을 시킬 수가 없어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서 상주하며 아이를 봐주셔야만 했었는데, 출근시간이 1시간 늦어진 덕분에 내가 직접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출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 덕분에 친정 엄마는 집에서 푹 쉬시고 유치원 하원 시간에만 맞춰 여유 있게 우리 집으로 오시면 되었다. 하원 후부터 내가 퇴근하기 전 저녁시간까지만 아이를 돌봐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큰 차이였다.


 친정엄마의 시간을 확보해 드리고 죄송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대신 매일 아침 내 출근 준비와 아이들 등원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부랴부랴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등원 버스에 태우고 난 뒤 다시 집에 돌아와 출근 준비를 마저 하고는 다시 집을 나선다. 


 문제는 아이들을 버스에 태우고 돌아서 들어오는 길이었다. 차라리 정신없이 출근해 버렸으면 모를까 아침부터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침대로 들어가 모자란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집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고요한 골목길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주부의 삶은 어떨까…’ 그런 생각은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이 되었고, 매일 아침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워킹맘의 정신줄이 고작 아침 출근시간 1시간 차이 때문에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후로 얼마 버티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버티지 못한 나는 상상을 현실로 이었다.


 분명 아침 전쟁이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막연했던 바람이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지는 순간 더 선명하고 간절해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의 작은 변화가 인생의 행로를 비틀기도 한다.


 그로부터 고작 몇 달 후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일상의 많은 부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만약 더 버텼던들 결국 어차피 코로나가 날 무너뜨렸겠구나 싶어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결국은 벌어질 일이었으니 그때의 내 선택을 후회하지 말자고… 나의 팬데믹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차라리 다행이다’라는 마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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