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보내기가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영어를 못 하면 영어학원을 못 간다고?
어른이 되면 결정할 것들이 늘어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결정해야 할 일들은 몇 배로 더 늘어난다.
나는 결정을 아주 쉽게 하는 편이다. 신중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본래 고민을 길게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결정을 하기 전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을 할 건지만 숙고하고, 그 이후엔 경중을 따져 빠른 결론을 내린다. 그다음엔 의도적으로 뒤돌아보지 않으려 한다. 좋은 선택만큼 선택 이후의 행동방식 또한 중요하다 생각하면서... 내 선택 자체에 가치를 더 하는 심리 기제일 수도 있고, 내 선택을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자존심일 수도 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나의 이런 단순함을 몹시도 부러워한다. 나 또한 그런 나의 단순한 뇌구조가 익숙하고 편하다.
그런데 아이의 일에 있어서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내 결정에 따른 잘못된 결과를 나 스스로는 감수할 수 있지만, 내 아이가 감수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본래 나의 사고방식과 충돌하여 어지럽고 불편해진다.
지나친 사교육을 경계하려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적지 않은 수의 학원을 다니고 있다. 내가 먼저 권하지 않아도 워낙 많은 것을 접하는 시대이다 보니 아이가 먼저 필요를 느끼거나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중 영어의 비중이 높은데, 아무래도 내가 약한 영역이라 결국 학원의 힘을 빌리게 된다. 그런데 영어학원 보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영어를 못 해 학원을 다니려는 건데 영어를 못 하면 학원을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입학 테스트를 합격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단기간에 준비할 수 있는 매뉴얼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해와서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기초적인 일상 대화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겨우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해서 학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괜찮은 학원들을 알아보고 일일이 전화를 걸어 테스트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대기를 걸어야 한다. 학원 T/O와 대기 상황에 따라 수개월을 기다리면 연락이 온다. 그리고 그제야 입학 테스트를 받으러 갈 수 있다.(농담 같은 진담으로 대치동의 어떤 학원은 아이 출생신고와 학원 대기를 동시에 한단다) 그렇게 연락이 오면 몇 만 원의 비용을 내고 테스트를 볼 수 있다. 테스트에 합격하고 적합한 반이 있을 경우에만 등록할 수 있다. 이때 아이의 스케줄과 그 반의 시간표가 맞아야 하고 셔틀 상황, 선생님, 학습 방식 등 전반적인 사항을 검토해봐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한 번이 아닌 여러 군데에서 진행하며 비교하여 가장 괜찮은 학원을 찾는다. 한번 다니기 시작하면 학원에 들이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고 또 효과를 보려면 어느 정도 꾸준하게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게 뭔 짓인가 싶고 엄두가 안 나거나 너무 귀찮을 때도 있다.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을 줄도 몰랐다. 그런데 그렇다고 아예 안 하면 몰라도 하려면 제대로 챙겨야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의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하는 게 더 두렵다. 기껏 애쓴 노력이 역효과를 낸다면 마치 나 때문에 아이의 행복을 망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에 큰 아이의 학원을 옮겼다. 물론 다른 엄마들처럼 야무지게 알아보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내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신이 났다. 열심히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지 입학 안내문을 나보다 더 꼼꼼히 읽고 무언가 메모도 한다.
저 아이에게 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소신이랍시고 중요한 걸 놓치면 어떡하지? 주변의 이야기들은 어디까지 듣고 걸러야 할까? 뭐가 정답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지금 저 아이의 학구열과 에너지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아이 자신의 인생,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함께 의논하고 현명한 결정을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