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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약 May 25. 2023

마음에게 뭐라고 하지 마

마음이 힘든 이유는 마음 탓이 아니니까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 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 밖에 안돼.”

- 드라마 <미생> 中 –


우리는 보통 체력과 정신력을 서로 다른 것으로 분리해서 생각하곤 한다. 심지어 정신력이 체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확고할 경우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어릴 땐 쥐뿔도 없으면서 자신감이 넘쳤는데 지금은 작은 일 하나도 주저하게 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큰 이유 하나가 체력이다. 어떤 일을 해내는 방법을 떠나 내가 힘에 부칠 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그로 인해 어떻게 무너지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난 유난히 잠이 많은 편이다. 어릴 땐 중학생 때까지 9시면 장소와 상황을 불문하고 잠이 들었다.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피아노 의자 위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거실 소파 위에서, 이동 중이라면 차 안에서… 그렇게 잠이 들면 깨우는 게 불가능해 부모님이 나를 번쩍 들어 침대로 옮겨주었다. 그렇게 일찍 잠에 들어도 아침에는 눈을 뜨기가 힘들어 겨우 겨우 집을 나서곤 했다. 이 수면 습관 때문에 처음 고등학교 생활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9시면 자야 하는데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이라니 말이다. 얼마 전 한의원에서 진맥을 짚어보았을 때에도 한의사 선생님께서 나는 단지 잠이 보약이며 다른 건 필요없다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같이 간 시어머니와 남편, 아이들을 바라보며 ‘엄마가 잘 때는 깨우지 말아야 한다. 잠이 필요해서 그런 거니 푹 자게 해줘라’라고 하시는 말씀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워내는 일 중에서 가장 힘든 건 ‘잠’이었다. 한 살 터울 큰 아들은 잠이 들기까지 보통 1시간 ~ 2시간은 기본으로 걸렸다. 그나마도 가만히 누워서 잠을 청하는 게 아닌 엎고 안고 흔들며 ‘섬집아기’를 백 번 부르고 ‘츗츗츗’ 입으로 백색 소음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 겨우 잠이 들었다. 어느 설문조사 통계에서 보통 아이가 수면에 드는 데 걸리는 시간의 평균이 ‘20분’이라는 결과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나마 이 아이는 그래도 한번 잠이 들면 밤새 깨지 않고 푹 잘 잤다. 문제는 둘째 아들이다. 밤에 우유 한 통이면 금새 잠이 들지만 깊이 잠들지 못 하고 밤새 뒤척인다. 2시간 마다 뒤척이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기를 만 4세까지 계속되었던 것 같다. 


이런 생활을 매일 매일 몇 년 동안 반복하다 보니 아이를 키워내는 일에 대해 엄두가 안 난다. 어찌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부족하다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의 많은 부모가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체력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결코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 마음이 너무 우울해진다면,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진다면, 하고 싶은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굳이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절대 내 마음을 탓하지 말아야겠다. 


내 정신 상태를 채찍질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저 푹 자고 일어나 볕 좋은 날 밖으로 나가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볍게 산책을 해야겠다.


그래도 영 축 쳐지는 기분이 든다면, 동네 의원에 들러 영양 수액이라도 한 대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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