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당위적인 문장 하나가 얼마나 많은 엄마들을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는지 모른다. 어째서 그 말을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의미만 염두에 두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아이를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하며 넘기기에는 이 세상 엄마들이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듣고 살게 되는지… 아빠들은 알까.
오랜 고민 끝에 워킹맘을 관두고 전업맘이 된 후, 물리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두 역할 사이에서 동동거리지 않게 된 것에 감사했다. 더 이상 아이에게 함께 해줄 수 없음을 설명하느라 애쓰며 늘 미안함에 사로잡혀 있지 않아도 되었다. 워킹맘의 사랑과 위대함을 이해하기엔 아직 아이들이 너무 작고 어리다. 이제는 언제고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면 함께해 줄 수 있다. 아니, 필요하든 안 하든 언제나 당연히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봐 줄 수 있다. 나의 손끝으로 아이와 직접적으로 교감하며 건강한 애착 관계를 토대로 편안한 안정감을 줄 수 있기에, 훈육해야 할 중요한 문제를 미안함 뒤로 감추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곁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만큼 아이를 전보다 더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육아 전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어떤 것들을 해줄지 시간대 별로 촘촘히 스케줄링하고, 오늘은 아이들이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가르치리라 다짐한다. 책도 많이 읽어 주고 맛과 건강을 둘 다 챙길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해야지. 사랑한다는 말도 백 번 해줘야지.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매일 아침 완충 된 배터리는 빠른 속도로 방전되어 버리곤 했다. 24시간 곁에 있다고 24시간 내내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몰랐던 걸까. 오히려 온종일 곁에 있지만 내가 온전치 않을 때에는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퍼져 아이들을 뒷전에 둘 때도 있었다. 그만하면 다행이지 부정적인 감정만 쏟아내는 일도 많았다.
심기일전하여 기운을 차려보아도 내 계획대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의 마음은 엄마의 계획과 무관하기 일쑤였고, 정성껏 차려놓은 식탁이 주인을 찾지 못하게 되는 날도 허다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탈탈 털리다가도, 갑자기 텅 비어버린 집에서 하릴없이 가족들만 기다리게 되는 날이 일정한 패턴 없이 반복되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다가도 막상 없으면 문제가 되는 자리, 엄마는 늘 그 자리에서 가족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자괴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러려고 내 커리어를 포기했나. 포기한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해냈어야 했는데… 그렇게 매일 밤 혼술을 마시며 ‘내일은 더 잘해야지. 아이에게 화내지 말아야지.’ 후회와 반성을 반복했다. 결국 상황만 바뀌었지 또 다른 형태의 죄책감에 빠져들고 말았다.
‘곁에 있어주는 시간의 양’이 좋은 엄마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24시간 곁에 있다고 해서 퇴근 후에만 함께 있어준 엄마의 2배쯤 더 좋은 엄마라고 계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그 사실을 막상 아이의 곁에 늘 머무는 삶을 살아 본 후에야 깨달았다.
“너 맛있는 거 사주려고 일하는 거야.”라는 말이 정말 싫다고 말했던 어떤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출근하는 엄마를 붙잡고 우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엄마는 엄마의 꿈을 위해서 나가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도 자신의 꿈을 향해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꿈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고 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투쟁해야 해요.”
워킹맘에게 쏟아지는 각종 비난과 불합리함, 사회 구조적 문제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고. 그녀는 ‘워킹’과 ‘맘’을 붙여 부르는 말 자체가 싫다고 했다. 일터에선 똑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 인거지 ‘일 하는 엄마’로 따로 분류할 필요가 왜 있냐는 것이다.
동료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자신의 삶에 대해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잘못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정말 엄마들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여기고 만다. 그러니 절대 죄인처럼 굴어선 안 된다. 그렇게 엄마들은 부당한 시선에 대해 투쟁해야 자신을 지킬 수가 있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렇구나. 난 왜 늘 모두에게 죄인처럼 살았을까. 나는 좀 더 당당했어야 했다.
사실 좋은 엄마의 전형적인 모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좋은 엄마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엄마 자신의 정서적 안정감’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