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을 제시하는 말
2주 전 바다가 동생과 말다툼을 하다 화가 났습니다.
분이 풀리지 않던 '바다'는 발버둥을 치다 발 뒤꿈치로 세탁실로 이어지는 나무 문을 쾅 차버렸는데요.
그만...문이 깨졌습니다.
'아. 일이 커졌다.'
'저 문 집주인에게 배상해야겠네. 돈 아까워'
'문은 왜 이리 약한가.'
'남편이 이거 보고 화내면 안 되는데'
수많은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답답함에 한숨도 나왔습니다.
아 그런데요...
전 아이의 감정폭발을 여러 번 겪으며 터득한 노하우가 있습니다.
아이가 화를 내다 물건을 파손하는 일이 생겼을 때
저는 딱 한 가지만 생각합니다.
'감정 조절'
아이의 감정이 이미 선을 넘었기 때문에
아이가 더 이상의 부정적 결과를 맞이하지 않도록
즉, 아이가 더 심한 행동을 하지 않고 여기서 그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나머지 일들은 그다음에 대화로 풀어도 충분하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화가 나 있는 아이 앞에서 조목조목 지적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화가 나 있는 아이는 귀가 닫혀 있더라고요.
조목조목 말해봐야 아이의 화만 돋우게 될 뿐
아이는 듣지 못하고
결국 제가 원하는 결과는 요원해집니다.
특히 아이가 화를 내며 물건을 파손했을 때
대화의 이슈가 물건 파손으로 옮겨가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대화의 주제가 아이의 감정조절에서 책임소재 따지기로 넘어가기 쉬워요.
아이와 부모 양쪽 모두 대화의 원래 목표를 잊어버리고 좌초하게 됩니다.
일단 감정조절에 집중하고 감정이 진정된 뒤
나머지 일들을 대화로 해결하는 게
아이의 행동 교정과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가 발뒤꿈치로 문에 구멍을 낸 뒤부터
제가 아이에게 한 말은
"화났고 억울한 거 엄마도 알겠어.
그런데 네가 진정해야 엄마랑 대화할 수 있어.
진정할 수 있어. 엄마는 기다릴 거야."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이 곁에 있어줍니다.
단, 제 감정이 동요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둡니다.
너무 심하면 등 돌리고 있기도 하고
옆 방으로 이동할 때도 있습니다.
화난 아이를 진정시키고 대화하는 건
에너지를 참 많이 쓰이는 일이에요.
먼저 제 감정이 동요되지 않도록 저를 보호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날 저녁.
아이와 단둘이 앉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엄마는 문이 깨져서 놀랐어"라며 말을 시작했어요.
"응 나도 놀랐어"
"아무리 화가 나도 물건을 깨면 안 되는 거잖아."
"응 엄마 나도 그 문이 깨질 줄은 몰랐어"
"응. 몰랐을 거 같아. 엄마도 깨질 줄 몰랐어. 화나서 물건 깨면 나중에 후회된다 그랬잖아?"
"응 후회가 되지"
"그래. 엄마는 바다가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니 안에는 더 나은 행동을 할 힘이 있어. 엄마가 도와줄 거야. 다음엔 더 나아질 거야. 화가 나더라도 최소한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지는 말자. 할 수 있겠지?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잖아."
"그렇지 많이 좋아졌지."
"응 그래 힘내자 우리"
부모의 역할 중 하나는
아이가 실수나 잘못을 하더라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
아이와 대화를 통해
지금 하는 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