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인정’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공유하는 지점이 있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잖아요.
전 어렸을 때부터 공감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생일 때부터 친구들이나 어른들로부터
“너는 공감을 참 잘해줘”란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인식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똑같이 느껴보려는 시도가
공감이구나 생각하게 됐고
계속 그 방식으로 공감을 해왔어요.
가족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저도 똑같이 기뻤고요.
친구가 이별의 아픔을 겪으면 함께 아파했어요.
어른들 사이의 관계에선 제가 공감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는데요.
아마 친구나 회사에서의 관계를 어느 정도 제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부모의 자식의 관계는 달랐던 거 같아요.
엄마가 되니 공감의 한계를 느끼게 됐거든요.
아이와 똑같이 느껴보려고 할 때 피곤해지는 상황이 종종 생겼어요.
예를 들어,
아이의 억울함을 공감하고 싶어도,
제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앞섰어요
'이건 내 아이의 생각이 짧았던 거 같은데’
아이의 말에 공감해줘야 하는데 내가 아이와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없으니
내가 잘못하고 있나? 생각이 들거나
아이의 느낌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아이의 언행과 느낌을 짚고 넘어가는 일도 생겼죠.
“억울하구나? 근데 네가 먼저 동생을 건드렸기 때문 아니야?”
네가 동생을 먼저 건드려서 난 싸움에 네가 억울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이 모든 게 공감이란 게 내가 아이와 같은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거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내 공감의 방식이 잘못됐나?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작가님의 책 <당신이 옳다>를 읽고 나서였죠
제가 했던 공감의 방식이 어느 면에서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어요.
공감은 상대방과 같아지려는 시도가 아니더라고요.
공감은 상대방의 느낌과 상황을 ‘인정’해주는 시도여야 했어요.
예를 들어
가족을 잃어 너무 슬픈 친구가 옆에 있어요.
친구와 같은 수준의 슬픔을 느껴야 공감일까요?
공감에서 중요한 건 친구가 느끼는 슬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제가 수용하는 것이더라고요.
맥락에 따라 상대방의 슬픔을 제가 똑같이 느끼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공감을 못한 게 아니에요.
상대가 슬프다는 걸 온전히 인정하면 상대의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진심으로 당신이 슬프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제가 슬픔을 느끼려고 제 감정을 소진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이 깨달음은 아이와의 관계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더 이상 아이의 감정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내가 똑같이 느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느낄 수 있나’ 또는 ‘이렇게 느껴도 되나’ 판단할 필요가 없었어요.
대신 “너는 그렇게 느꼈구나” 받아들이면 되었어요.
약간의 변화였지만
저에겐 큰 효과였어요.
무엇보다 첫째, 제 감정 소진을 막을 수 있었어요.
그 결과 아이와의 관계가 더 편해졌어요.
예를 들어 아이의 억울한 감정에 공감할 때 효과가 컸어요.
ADHD 우리 ’ 바다‘는 동생과 갈등이 생기면 많이 억울해합니다.
싸움이란 것이 그동안 누적된 감정이 터져 나오는 것인데 아이는 동생과의 싸움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에서 벌어진 동생의 언행만 문제 삼죠.
최초의 원인제공이 본인이었어도 그걸 인정하지 못해요.
이게 ‘바다’의 감정을 제가 똑같이 느낄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네가 억울함을 느꼈구나”하고 인정하고 수용해 줍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눈앞의 상황만 판단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한 게 맞으니까요.
아이의 감정 수용을 할 때
굳이 아이의 감정과 제가 동일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전체적인 맥락에서 동생과의 갈등을 파악하는 건 공
공감을 한 뒤 몇 시간 지나서 또는 다음날 해도 충분해요.
이제까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제가 관심 갖고 있는 분야를 알게 되었어요.
제가 쓴 글을 쭉 살펴보니
저는 ADHD 아이와 감정을 소진하지 않으며 대화하고 훈육(가르침)하는 방법을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느끼던 시절
감정적으로 많이 소진된다고 느끼던 시절의
어려움을 풀어가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을 돌아보면
그 시작점은 인정과 수용이었던 거 같아요.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수년이 걸렸네요.
그리고 ‘공감’하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은
제가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 발판이 되었어요.
아이와 자꾸 감정적으로 갈등이 생긴다거나
아이와 대화가 어려운 분들은
아이와의 공감이 되고 있는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는 것부터 시작하시라고 조언해드리고 싶어요.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 방향성을 정하고 나면
언젠가는 매듭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