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
아이로부터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과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아이는 학교에선 긴장하고 있던 탓에
딱히 부정적 피드백이 없는 모범생 아이로 지냈지만
집에서는 산만하고 충동적이고 화와 짜증이 많은 전형적인 ADHD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3~4학년 즈음엔 미루고 미루던 소아정신과를 찾아갈만큼 아이의 증상이 최고조라고 느꼈고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아이가 호전되었다고 느낀 건 5학년 들어서입니다.
아이가 감정을 말로 표현해주기 시작했고
감정폭발 횟수도 많이 줄었습니다.
'노력한 것들이 효과가 나타나는구나'싶어 안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가 학교에서 학급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 벅차게 기뻤습니다.
동시에 안도했습니다.
'학교에선 친구들과 관계가 좋구나'
충동산만 복합형 ADHD를 가진 우리 바다.
어려움이 있는 아이가 학교에서 학급회장이 되었다고 하니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바다에게 성장의 기회가 되겠다!
였습니다.
왜냐하면 5학년 한 학기 동안 학급회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행동해야할테니까요.
선생님과 친구들의 주목 속에서
아이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할 기회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자기 전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준 기억이 납니다.
"학급 회장 할 생각 하니까 기분이 어때?"
"부담되는 거 같아. 반 친구들이 하는 걸 자세히 살펴봐야 하잖아. 나 그런거 부담스러운데"
"맞아. 부담될 수 있겠다. 그런데 엄마는 바다가 회장하게 된 건 좋은 기회 같아.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자. 고민되거나 어려운 일 있을 땐 선생님이나 엄마한테 편히 얘기해줘."
5학년 학급 회장은 아이에게 '책.임.감.'이라는 세글자를 경험하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임원 회의에 참석하려고 이른 아침 등교하고
학급 회의를 주최하고
선생님 심부름도 하고
친구들 사이의 갈등도 중재해 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신임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비록 학교에선 아무도 모르시지만,
ADHD 아이가 학교에서 이뤄낸 성취이기에
그 무엇보다 빛나는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아이의 어떤 면이 학급회장이 되도록 이끌었을까.
궁금했습니다.
5학년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에
선생님께 여쭤보았어요.
선생님의 대답은
"어머니, 바다는 말을 참 예쁘게 하고 따뜻해요. 이 나이대 아이들이 험한 말도 쓰고 친구를 놀리거나 짓궂은 장난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바다는 그런게 없어요. 그리고 발벗고 나서서 친구들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아이들이 좋아해요."
말을 참 예쁘게 한다는 선생님 말씀이 특히 와닿았습니다.
아이는 제게 들은 대로 친구들에게 가서 말해줬던 것 같아요.
아이를 존중하는 대화를 하려고 그동안 노력했던 게 빛을 발했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일은 제가 아이와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 번 더 깨닿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다는 학급회장이라는 역할 속에서 나름의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5학년 2학기 친구 추천으로 어쩌다보니 학급회장이 되었다고 말하던 아이는
6학년 1학기 들어 스스로 손을 들고 학급회장 선거에 나갈 정도로 자신감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2학기 연속 학급 회장에 당선됐습니다.
저는 아이가 학교 생활에서의 자기효능감을 느끼고 장점을 발견한 게 최고의 성과라고 생각해요.
아이는 학급 임원을 하며 자신의 장점을 찾았습니다.
아이는 학급 친구들을 도울 때, 선생님을 도울 때 뿌듯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친구들을 잘 도와준다는 걸 알았습니다.
처음 학급 회장이 되었을 때 "친구들을 신경써야 해서 부담된다"던 아이는
"친구들을 도와줄 때 기분이 좋아"라는 말을 할 정도로 크게 성장해있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장점을 알고 효능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스스로 나서서 다른 사람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영화관에 갔다가
아이를 안은 어느 어머님이 무거운 출입문을 잡고 있는걸 보게되었습니다.
여러 명이 아줌마가 잡고 있어 열린 문을 그냥 지나쳐 나왔는데
바다가 나오다 말고 갑자기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바닥을 손으로 짚어가며 무언가를 찾았습니다.
'바다가 뭘 잃어버렸나?'하고 도와주러 가려는데
바다가 문 받침대를 더듬더듬 찾아내 문 아래에 꽂아놓고
"아줌마 이제 문에서 손 놓으셔도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오~아줌마가 문 잡고 있는걸 보고 도와준거야?"
"응 무겁잖아 그것도 한손으로"
늘 기억하려고 합니다.
아이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리고 제 일은 아이의 최선을 알아봐주는 것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는 안전함을 느끼며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