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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미국 학교 가기 싫어"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불안해할 때 해주는 말

by ADHDLAB Jan 19. 2025

우리 가족은 몇 년 전부터 미국 일년살이를 계획했습니다.

남편이 1년 해외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다만 언제 가느냐가 이슈였어요.

원래는 '바다'가 초등 3학년쯤 미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과 회사 내 사정, 그리고 '바다'의 ADHD진단과 치료 때문에 미국 연수를 몇 년간 미뤄왔습니다. (네, 그때 안 간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지난해 8월 해외 연수 기회가 와서 미국에 왔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곳에 와서 적응하는 건 큰 도전이었습니다.

특히 바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언어 습득이 늦은 아이라

영어를 써야 하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죠.

해외연수가 결정된 2024년은 바다가 중학교로 진학해야 하는 나이라서

정말 걱정이 컸습니다.

아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의 미국 적응과정에서 요구될 영어 수준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으니까요.


저만 이런 걱정을 한 게 아니라 아이도 많이 걱정했나 봅니다.

'바다'가 초저학년일 우리 가족이 미국에 살게 있고, 미국 학교에 다니는 기회가 생길 같다는 이야기를 처음 해주었어요.

미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는 대번에 "싫어"라고 답했어요.

영어로 말하기 싫다, 한국 학교가 너무 재미있는데 굳이 왜 미국을 가야 하냐고도 했죠.

당시엔 미국에서 공부해 보는 게 좋은 기회일 거라는 말 정도 해주었던 기억이 나요.


2023년 말 미국 연수가 최종 결정됐습니다.

아이에게 미국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아이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5학년이 된 아이는 "걱정되지만 한번 해볼게"라고 답해주었죠.


"싫어"라는 답과 "한번 해볼게"라는 답 사이에는 약 3년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3년간 아이를 변화시킨 건 무엇이었을까.

아마 저의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처음 미국에 갈 준비를 하자고 생각했을 때 '영어'를 준비시키자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영어를 좀 해야 적응이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바다'는 영어공부를 잘해주지 않았죠.

화상영어를 제안해도 싫다 했고, 원어민 선생님 과외를 시작했지만 몇 번 하고 중단해야 했어요.

저는 답답했죠. '이래서 어쩌지?'


그런데 3년간 아이의 ADHD 상담을 받으면서

그리고 제가 공황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미국 갈 준비를 하며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바로 가족의 지지와 도움입니다.

한국에서 미리 영어 실력을 높이는 게 필요하고 적응 과정에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없어주지는 않습니다.


미국행에 앞서서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건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통제할 수도 없는 낯선 환경과 마주할 때

불안감을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마음근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감은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기에 없앨 수가 없으니까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소화하고 감당하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아이가

"영어만 쓰는 미국 학교 가면 많이 힘들겠다 그치?"

"나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아웃사이더 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해줄 때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불안한 마음,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해 주어서요.


"중학교 가면 영어가 어려워질텐데 영어 공부도 안하고 어쩔래"

"다른 얘들은 영어공부 이만큼 해"

라는 식의 말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아이의 불안, 걱정하는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었습니다.

"그래 새로운 곳에 가니까 걱정되고 불안할 수 있어. 그건 당연한 감정이야. 엄마도 새로운 곳에 간다는 생각 하면 긴장되고 걱정되는 것들도 있어."


그리고 아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 주었어요.

"바다는 중학교를 가야 해서 더 긴장될 수 있겠다."


그리고 불안과 걱정을 어떻게 다루어나갈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런데 우리 가족 똘똘 뭉쳐서 같이 잘 이겨낼 거고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중학교 적응이 쉽진 않을 수 있어. 그런데 엄마가 옆에서 많이 도와줄 거야 그러니까 불안하거나 걱정되거나 긴장되면 언제든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같이 이겨내자."


이렇게 아이에게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 적응하는 걸 서로 돕자는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아이는 미국에 오기 직전

결국 화상 영어와 원어민 선생님 수업을 마다했지만

미국에 가야한다며 다니던 동네 영어 학원을 착실히 다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나름의 방식으로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아직 학년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비해 한참 모자라지만

아이의 처음 수준과 비교하면 점차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우리 아이에게 기대하는것부터가 무리죠.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됩니다.


영어보다는

학교 적응과정에서 아이 혼자 감당하고 해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 과정을 잘 지나온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이 경험을 통해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연대를 느끼고

그 안에서 보호받고 응원받고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기반으로

아이가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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