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몇 년 전부터 미국 일년살이를 계획했습니다.
남편이 1년 해외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다만 언제 가느냐가 이슈였어요.
원래는 '바다'가 초등 3학년쯤 미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과 회사 내 사정, 그리고 '바다'의 ADHD진단과 치료 때문에 미국 연수를 몇 년간 미뤄왔습니다. (네, 그때 안 간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지난해 8월 해외 연수 기회가 와서 미국에 왔어요.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곳에 와서 적응하는 건 큰 도전이었습니다.
특히 바다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언어 습득이 늦은 아이라
영어를 써야 하는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죠.
해외연수가 결정된 2024년은 바다가 중학교로 진학해야 하는 나이라서
정말 걱정이 컸습니다.
아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의 미국 적응과정에서 요구될 영어 수준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으니까요.
저만 이런 걱정을 한 게 아니라 아이도 많이 걱정했나 봅니다.
'바다'가 초저학년일 때 우리 가족이 미국에 살게 될 수 있고, 미국 학교에 다니는 기회가 생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처음 해주었어요.
미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는 대번에 "싫어"라고 답했어요.
영어로 말하기 싫다, 한국 학교가 너무 재미있는데 굳이 왜 미국을 가야 하냐고도 했죠.
당시엔 미국에서 공부해 보는 게 좋은 기회일 거라는 말 정도 해주었던 기억이 나요.
2023년 말 미국 연수가 최종 결정됐습니다.
아이에게 미국에 가게 되었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아이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5학년이 된 아이는 "걱정되지만 한번 해볼게"라고 답해주었죠.
"싫어"라는 답과 "한번 해볼게"라는 답 사이에는 약 3년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3년간 아이를 변화시킨 건 무엇이었을까.
아마 저의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처음 미국에 갈 준비를 하자고 생각했을 때 '영어'를 준비시키자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영어를 좀 해야 적응이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바다'는 영어공부를 잘해주지 않았죠.
화상영어를 제안해도 싫다 했고, 원어민 선생님 과외를 시작했지만 몇 번 하고 중단해야 했어요.
저는 답답했죠. '이래서 어쩌지?'
그런데 3년간 아이의 ADHD 상담을 받으면서
그리고 제가 공황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미국 갈 준비를 하며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바로 가족의 지지와 도움입니다.
한국에서 미리 영어 실력을 높이는 게 필요하고 적응 과정에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을 없어주지는 않습니다.
미국행에 앞서서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건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통제할 수도 없는 낯선 환경과 마주할 때
불안감을 감당하도록 도와주는 마음근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감은 당연히 느끼는 감정이기에 없앨 수가 없으니까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소화하고 감당하는 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아이가
"영어만 쓰는 미국 학교 가면 많이 힘들겠다 그치?"
"나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아웃사이더 되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해줄 때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불안한 마음,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해 주어서요.
"중학교 가면 영어가 더 어려워질텐데 영어 공부도 안하고 어쩔래"
"다른 얘들은 영어공부 이만큼 해"
라는 식의 말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아이의 불안, 걱정하는 마음을 온전히 받아주었습니다.
"그래 새로운 곳에 가니까 걱정되고 불안할 수 있어. 그건 당연한 감정이야. 엄마도 새로운 곳에 간다는 생각 하면 긴장되고 걱정되는 것들도 있어."
그리고 아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 주었어요.
"바다는 중학교를 가야 해서 더 긴장될 수 있겠다."
그리고 불안과 걱정을 어떻게 다루어나갈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런데 우리 가족 똘똘 뭉쳐서 같이 잘 이겨낼 거고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중학교 적응이 쉽진 않을 수 있어. 그런데 엄마가 옆에서 많이 도와줄 거야 그러니까 불안하거나 걱정되거나 긴장되면 언제든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같이 이겨내자."
이렇게 아이에게 우리 가족이 힘을 합쳐 적응하는 걸 서로 돕자는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아이는 미국에 오기 직전
결국 화상 영어와 원어민 선생님 수업을 마다했지만
미국에 가야한다며 다니던 동네 영어 학원을 착실히 다녔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나름의 방식으로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아직 학년에서 요구되는 수준에 비해 한참 모자라지만
아이의 처음 수준과 비교하면 점차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우리 아이에게 기대하는것부터가 무리죠.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됩니다.
영어보다는
학교 적응과정에서 아이 혼자 감당하고 해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 과정을 잘 지나온 아이가 대견하고 기특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이 경험을 통해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연대를 느끼고
그 안에서 보호받고 응원받고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기반으로
아이가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