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이의 속마음이 보였다
"오늘은 공부 안 하면 안 돼?"
"이거 꼭 해야 해?"
"한 문제만 풀면 안 돼?"
매일 공부시간만 되면 아이가 하는 말입니다.
'얼마나 하기 싫으면 이 말을 할까' 싶다가도
막상 매일 하루 몇 번씩 이 말을 들으면
솔직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이 말로 시작된 아이의 짜증이 자주 감정폭발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 말은 저의 '예측 불안'을 자극합니다.
공부 시간이 가까워 오면 또 아이가 감정폭발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거든요.
아이가 공부를 회피하고 싶어 하는 말
짜증 섞인 말을 하면,
저도 나름 좋게 말하고 싶어
"하기 싫어도 해야지"
"그래도 하기로 약속한 건 해야지."
라고 대답했어요.
선을 그어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감정 조절이 어려운 아이라서 그런지
제 말에 아이는 더 짜증이 나고 맙니다.
"하기 싫다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건데~~"
하며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죠.
지난주 어느 날 저녁
문제집을 펼쳐놓은 아이가 연필을 던지거나 부러뜨리는 장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마 제가 조금 지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가 이제 한 살 더 먹었고 중학생이 되었기에
제가 한번 더 내려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우선 오늘 하기로 한 공부를 아이가 꼭 하도록 돕자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 시간
역시나 아이가 회피와 짜증의 말을 했습니다.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물끄러미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한쪽 눈썹이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조금 보였습니다.
아이는 지금 공부하기 싫은 마음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공부해야 하는 걸 몰라서 "이거 꼭 해야 해?"라고 물어본 게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안 하겠다는 뜻으로 "오늘 안 하면 안돼?"라고 물어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해야 하는 마음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뒤엉켜 있는 상태였고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짜증섞인 의문형 문장으로 말했다는 걸
아이의 눈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ADHD 아이들은 감정 표현이 미숙해 자신의 마음과 달리 표현하는 경우가 잦아요.
아이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이면에 숨어 있는 감정과 의도를 살펴보세요"라고 했던 인지상담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의 물음에 직접적인 대답을 해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
"오늘은 공부해야지"
"꼭 해야지"
"한쪽 풀기로 한 거 다 풀어야지"
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해야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할지 안할지 문제를 1문제만 풀지 1쪽을 다 풀지 결정할 사람은
엄마인 제가 아니라 아이여야 합니다.
상황을 이해했지만
좋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참 지나 아이가 말했습니다.
"휴, 그래도 하기로 했으니까 해야겠지."
제가 한걸음 물러났더니
아이가 한걸음 앞으로 나왔습니다.
이제까지 아이와 지내며 공부를 "해야지"라고 생각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많이 궁리했습니다.
계획도 세워보고, 재미있게도 해줘 봤지만 그때뿐이었는데.
그렇게 기다리던 그 말을
제가 한발 물러났을 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갈등하는 마음이 제 눈에 들어왔던 게 터닝포인트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부터 아이가 공부를 회피하려는 말을 하면
전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 좋은 말을 못 찾았습니다.
어떨 땐 침묵이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당분간은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의 뒤엉킨 마음을 지그시 바라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아이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아까 공부할 때 하기 싫은 마음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싸우는 것 같았어.
그래도 해냈네 지금 기분은 어때? "
"성취감 있어"
"응 하기 싫은 마음을 잘 이겨냈어. 잘한 거야"
유독 감정조절이 어려운 우리 바다가
뒤엉킨 감정을 마주하고 풀어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기를,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경험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