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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그 Apr 06. 2019

가난은 내 잘못이 아니잖아 #1


몇 년 전, 한 사이트에서 글 한 편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대문 옆에 뚝 떨어져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 너무 싫었다. 어른이 되면 꼭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을 사겠노라고 결심했고 결국 간절히 바라던 집을 구했다. 그런데 막상 수세식 화장실에서 일을 보니 다리가 너무 아픈 것이다. 다음에는 양변기가 있는 집에서 살겠다고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그는 양변기가 있는 집을 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료 집에 놀러를 갔는데 그 집은 화장실이 두 개가 아닌가. 이에 자극받은 남자는 또다시 열심히 돈을 벌었다. 화장실은 2개가 되었고 이내 3개가 되었다. 
그가 화장실에 집착하는 사이 가족들은 그에게서 멀어졌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직 돈만 버는 가장을 포기했고 결국 그는 그 넓은 집에 홀로 살게 되었다. 


화장실처럼 부가적인 요소들에 집착하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놓치는 삶에 대한, 글쓴이의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런데 나는 왠지 그 남자의 집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가난은 더러운 삶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콤플렉스 덩어리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든 건 가난이었다. 초등학교 때 꿈이 '돈 많은 고아'였을 만큼 가난한 우리 집이 너무나 싫었다. 가난은 불편이었고 더러움이었다. TV에서 묘사되는 엄마 없는 애들의 단적인 모습이 꼬질꼬질한 얼굴이었는데, 내가 꼭 그랬다. 나는 가난했고 엄마도 없었다.  


할머니와 아빠는 자주 집을 보러 다녔다. 없는 형편에 다섯 식구가 살 집을 구하려다 보니, 괜찮은 집이 나왔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늦은 밤이라도 방을 보러 갔다. 우리는 언제나 동네에서 가장 싼 집 중 한 곳에서 살아야 했다. 욕실이나 주방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다섯 명이 편히 잘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했다. 우리의 유일한 조건은 방 2칸이었다. 길을 가다가 '전세, 방 2칸'이라는 전단지를 보는 날이면, 어김없이 할머니에게 달려가 "방 2칸 까리 전세를 봤어요!"라고 말하던 기억이 많다. 


큰 방에선 아빠와 내가 잤고, 작은 방에선 할머니와 오빠들이 잤다.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니, 불편한 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욕실이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집들엔 '욕실'이라고 부를 만한 공간이 없었다. 쓰러져가는 창고 같은 곳에서 씻거나, 밖에 천을 둘러놓고 씻어야 했다. 따뜻한 물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날이 추워지면 큰 냄비에 물을 끓인 후, 이를 들고 밖으로 나가 씻었다. 중학교 2학년 땐 펄펄 끓는 물을 들고 가다 발목에 쏟아 한참을 병원에 다니기도 했다. 


일요일은 목욕탕에 가는 날이었다. 몸에선 검은 때가 국수가락처럼 밀려 나왔고, 손톱 아래 까맣던 때도 녹아 없어졌다. 

 




내 몸에선 쿰쿰한 냄새가 났다



욕실만큼 화장실도 불편했다. 우리 집 화장실은 언제나 대문 옆에 있었다. 화장실에 가려면 겉옷을 꺼내 입고 신발을 신어야 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 덮개를 들어 옆으로 치운 후 쪼그려 앉았다. 일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 날이면 한쪽씩 다리를 주물렀다. 방심하다간 큰일이 났고 너무 세게 힘을 줘도 안 됐다. 화장실은 집중을 요하는 장소였다. 냄새도 참기 힘들었다. 쿰쿰한 냄새와 벌레가 가득한 곳에서 가족들은 일을 해결했고 지친 몸을 이끌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화장실이 불편하다 보니 변비가 생겼다.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도 불편했다. 친척들은 우리 집에서 제대로 먹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기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생리를 시작했는데, 편하게 생리대를 갈거나 깨끗하게 씻을 수도 없었다. 몸에선 지독한 냄새가 났다.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다. 친구들이 놀리거나 손가락질한 적은 없었지만, 나는 계속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자주 이사를 했는데, 언제나 비슷한 집이었다. 그 무렵 내 주변엔 누구도 우리 집만큼 허름한 집에서 사는 사람이 없었다. 큰아버지댁이나 고모집은 넓고 깨끗했는데, 친구들 집도 따뜻하고 깨끗했는데 우리 집은 언제나 더럽고 낡아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이 없는 친구들도 나보다는 깨끗한 곳에서 살았다. 






내 성공의 기준은 냄새나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아빠는 지금의 엄마를 만나고서 집을 샀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비싼 집은 아니었다. 그 집도 화장실이 그랬으니까. 

우리 집 화장실은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비로소 깨끗해졌다. 아빠도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이제야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게 해 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욕실에 양변기가 들어왔고 대문 옆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화장실이 두 개인 부잣집이 되었다.


화장실은 내게도 성공의 기준이었다. 그 냄새나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게 나는 그리도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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